인간들에게 항상 씹히는 껌이 평생 희생한 대가로 하루만 사람이 됐다. 인격체가 된 껌이 무슨 말을 할까? 이왕이면 요즘 인기 상승세인 KBS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인 '네 가지'에 특별 게스트로 초청된 형식을 빌려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그래 나 껌이다. 다들 나보고 '껌값이다' '껌 씹는 소리 하고 있네' '껌 주웠네' '껌딱지 같은 놈' '그거야! 껌이지!' 등 헐값이나 하찮은 것에 비유하며 폄하해서 말하는데 이거 아니다. 요즘 나 비싸다. 5천원짜리 기능성 껌도 있고, 여성들 명품 핸드백에 어울리는 고급 디자인의 껌도 나오고 있다. 그뿐 아니다. 메이저리그에 가면 연봉 수백억원의 스타플레이어들이 경기 내내 입 안에 날 넣고 불어주기도 한다. 그뿐 아니다. 차 안에서도 필수품이 됐고 운전할 때 잠도 쫓아준다. 가운데를 누르기만 해도 '탁!' 하고 올라오는 튀는 껌도 있다. 이 정도면 호랑이 담배 피우는 시절의 껌 얘기는 이제 더 이상 하면 '아니 아니 아니 되오!' 그동안 다들 내가 '껌'이라고 쉽게 보고 얘기했는데 오해하지 마라! 마음만은 '럭셔리를 꿈꾸는 껌'이다."
듣고 보니 공감이 된다. 요즘 껌은 그렇다. 껌의 얘기대로 껌이 달라져도 한참 달라졌다. 100원, 200원짜리 껌은 사라지고 최소 500원에서 1천원, 심지어 5천원, 1만원대 껌도 등장하고 있다.
씹어서 단물만 빼 먹는 수준이 아니다. 입안을 청결하게 해주고, 치아를 보호하는 역할까지 담당한다. 심지어는 사람의 기분까지 좋게 만들어준다. 껌을 아주 싸고 하찮은 것으로 취급하는 속담도 이제는 바꿔야 할 판이다.
※껌이란? 씹을 수 있도록 고무에 설탕과 박하 따위의 향료를 섞어서 만든 먹을거리. 입에 넣고 오래 씹으면서 단물을 빼 먹는다.
◆다양한 기능성 껌
헐값을 말할 때 흔히 '껌값'이라고 한다. 그만큼 껌은 값싼 제품의 대명사로 통한다. 하지만 이젠 달라지고 있다. 껌이 껌값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면 1봉지나 아이스크림 1개, 과자 1봉지보다 더 비싼 제품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오리온이 출시한 '내츄럴 치클'은 17개들이 한 통에 2천500원. '초고가'다. 플라스틱 통 포장인 해태제과의 '아이스쿨'은 대용량 포장으로 5천원. 시쳇말로 껌값이 장난이 아니다.
오리온 회사 관계자는 "일반적인 껌은 초산 비닐수지라는 인공 껌베이스를 사용해 만드는 데 비해 '내츄럴 치클'은 멕시코의 '사포딜라' 나무의 수액으로 만든 천연 치클만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해태제과의 '아이스쿨'은 국내 최초로 큐브 형태로 만든 껌이다.
껌의 시장성은 이미 검증됐다. 매출 대비 이윤도 많다. 업체마다 추정 규모는 다르지만 국내 껌 시장의 연간 매출은 2천200억원에서 2천500억원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에 더해 껌은 크기가 작아 물류비용이 싸고 진열공간도 작게 차지한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껌은 '식품계의 반도체'로 불리기도 한다.
국내 껌 시장은 롯데제과가 70% 정도를 점유하고 있고, 오리온과 해태제과가 나머지를 나눠 갖고 있는 상황이다. 껌 시장의 절반이 자일리톨 껌이고 그 가운데 90%가 '롯데 자일리톨 껌'. 이른바 '핀란드 마케팅'으로 성공을 거둔 롯데 자일리톨 껌은 2000년대 이후 껌 시장의 '절대강자'로 자리 잡았다.
졸음방지용 껌의 매출은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졸음방지용 껌 제품은 남미에서 재배되는 과라나(guarana) 열매의 추출물과 페퍼민트향이 첨가돼 대뇌피질을 자극하고 각성파로 알려진 베타 뇌파를 증가시켜 준다. 이 원료들은 반면 진정파로 알려진 알파파와 수면작용을 일으키는 델타파는 감소시켜 졸음을 쫓는 원리를 갖고 있다. 이뿐 아니라 기분을 유쾌'상쾌'통쾌하게 해주는 기능을 가진 껌들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껌에 관한 얘기들도 달라져야?
전통놀이 연구가 이철수 씨는 껌에 관해 "콩 한 개도 나눠먹던 시절엔 어쩌다 껌이 생기면 열흘, 아니 한 달 정도는 씹었다. 그래서 돈이 생기면 껌을 사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 여겼다"며 "집안의 벽이나 기둥은 온통 껌을 붙였던 흔적이 있었다. 하루에도 붙였다 씹었다를 수십 번씩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껌은 이처럼 인기가 좋았으나 한때 저렴한 것의 대명사로 그 위상이 급추락했다 다시 현대 들어 다양한 기능성을 장착하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며 "지금 만약 껌을 나눠 씹자고 제의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겠지만 과거엔 껌을 나눠 씹는 게 우리네 인심이었다"고 소개했다.
껌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껌을 비하하는 얘기들도 숙져야 하지 않을까? '봉 잡았다'는 '와! 껌 잡았다'로 바꿔도 좋을 듯하다. '껌 주웠네'는 '껌, 재수 좋네!' 등으로 바꿔주면 껌이 덜 섭섭할 것 같다.
개들도 이젠 껌에 관한 얘기들이 귀에 거슬린다고 집단 항의할 태세다. '개 껌 씹는 소리 하고 있네!' 이 말은 견공들에겐 자존심 상하고 기분 나쁜 말이 될 수 있다. 견공들에겐 간식으로 껌을 씹는 것이 아주 행복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또 개 껌 중에는 사람들이 씹는 껌보다 비싼 제품들도 많다.
◆스타일이 산다
오리온은 펌프 껌을 내놓았다. '더스트 프리 캡'(dust free cap)을 새롭게 적용한 리뉴얼 제품이다. 이 제품은 기존 용기와는 달리, 껌이 나오는 부분에 먼지가 묻지 않도록 처리됐다. 펌프 껌은 용기 뚜껑을 들었다 놓기만 해도 껌이 용기 가운데로 쉽게 나올 수 있도록 한 것. 독특한 방식의 디자인과 다양한 맛을 자랑한다. 특히 차량 비치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펌프 껌에는 자일리톨과 함께 치아건강에 도움이 되는 뮤타엑스 성분이 첨가돼 있다. 자일리톨 애플민트, 아쿠아민트, 생후라보노, 센스민트 등 4종으로 구성돼 있다.
기존 껌이 입냄새 제거나 치아위생에 중점을 뒀다면 최근에는 목건강이나 목소리까지 생각하는 제품들이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해태제과는 목소리까지 관리할 수 있다는 '츄앤씽'을 내놓았다. 해태제과 측은 "씹고 노래하는 껌을 표방하고 있는 '츄앤씽'은 주요 영양성분인 마그네슘과 사과산의 영향으로 씹은 후 30분이 지나면 성대 근육이 이완되고 폐활량이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노래 권하는 문화코드를 접목해 껌을 한층 업그레이드시켰다. 이 제품은 전화상담원'가수'성우 등 목을 많이 쓰는 직업군에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오리온은 목에 좋은 한약 성분을 넣은 목껌 '목의보감'을 내놓았다. 한방에서 목에 좋다고 알려진 천궁'감초'당귀 등의 성분을 함유해 담배연기와 공해에 시달리는 30, 40대 남성을 겨냥했다.
껌을 제조하는 회사에서는 여성용 명품 핸드백에 들어갈 스타일리시한 껌 디자인, 어린이들이 좋아할 껌의 애니메이션 디자인 등으로 고객연령에 맞춰 공략하고 있다. 또 노인들을 위한 '의치에 붙지 않는 자일리톨 껌', 소화기능까지 더한 '위(胃) 껌' 등도 눈길을 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우태욱기자 w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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