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마음의 책] 실패와 상처, 고백하고 나눠야 줄어든다

예술, 상처를 말하다/심상용 지음/시공아트 펴냄
예술, 상처를 말하다/심상용 지음/시공아트 펴냄

누구나 상처 입는다. 상처는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상처는 온 세상의 무게와 맞먹을 만큼 고통스럽지만, 때론 앞으로 전진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은 '예술이 된 상처'에 대해 이야기한다. 좋은 예술은 상처받은 영혼이, 믿음이라는 나약해 보이는 힘에 의존해 벌여온 도전의 결과다.

작가는 열 명의 작가를 선별해 그의 예술을 통해 약함에 내재하는 신비로운 힘을 이야기한다.

절망을 실토하면 상대의 가슴에 잠재된 소망을 불러내고, 고백된 상처는 공감대와 연대로 나아가는 다리가 된다. 온몸을 화살촉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프리다 칼로의 그림, 그 상처가 바로 그림이 지니는 미적 힘이다.

20세기를 상징하는 팝아트의 황제 앤디 워홀은 또 어떤가.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워홀라'는 가난 때문에 대학을 포기해야 했다. 충분히 배우지 못한 삽화가로서 치욕과 수치심을 견디며 1950년대를 지냈던 워홀라는 전혀 다른 제3의 인물이 되고 싶어 했다. 이름을 '워홀'로 개명하고, 언제나 화장하며 최상류층과 교제하며 '워홀'로서의 정체성을 쌓아갔다. 그는 열등감을 보상받기 위해 끝없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갔고, 대중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실존했던 사회적 약자이자 깊은 상처를 입은 영혼 '워홀라'는 삭제되고 만다.

카미유 클로델은 가족에게서조차 버림받을 정도로 외로웠고, 인생의 절반은 정신질환자 수감소에서 보내야 했다. 철저하게 약자였지만, 약자 카미유는 역사적 서사의 중심을 차지했던 그 어떤 강자들보다 더 많은 진실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외롭고 가난했던 화가 반 고흐는 깊은 내상을 입은 채 인생의 순례적 본질에 대해 깊이 사색하고 천착했다.

저자는 시종일관 '약함'을 예찬한다. 약함은 선구자적 영혼을 밝힌다. 약함이라는 토양에서만 창조성이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미덕은 예술가를 과대포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와 같이 약하고, 외롭고, 나보다 더 상처받기 쉬운 나약한 인간이 바로 예술가다. 이름에 덧씌워진 거품을 걷어 내고, 그들을 바라보면 비로소 인간 대 인간으로서 공감과 연대가 생겨난다. 그래서 그들과 더불어 나 역시 위로받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자, 이제 그만 솔직해지자. '모든 인간은 실패한다'. 이것을 인정하고 나면, 홀가분하다. 실패와 그 인식 자체에 이미 신비로운 힘이 내재한다. 실패의 고백은 어떤 탁월한 영웅담보다 이 땅의 진실과 대면하도록 이끈다. 저자는 말한다. 실패만이 인생을 설명하고, 상처만이 상처를 싸매며 상처의 고백만이 상대를 일으켜 세운다고.

혹시 살펴보자. 내 속에 끝끝내 드러내지 못하는 약한 토양이 있는지. 혹은 내 주변에 외롭고 힘든 영혼이 있는지. 그 약함을 돌아보자.

그래, 상처받기 전으로 되돌아갈 순 없다. 상처는 비가역적인 것이니까. 하지만 상처는 고백하고 나눔으로써 완화된다. 그것이 바로 케테 콜비츠, 권진규, 백남준, 이성자, 마크 로스코, 장미셀 바스키아의 삶에서 얻어지는 연대 의식이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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