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그림을 그린다는 게 쉽지 않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족화(足畵) 화가가 되고 싶어요."
15년 동안 발로 그림을 그려온 표형민(24) 씨. 양팔을 전혀 못 쓰는 1급 지체장애인인 그는 족화에 인생을 걸었다. 대구에는 표 씨처럼 발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드물다.
작업장은 성보재활원 숙소 거실. 같은 방 동료들이 학교에 가거나 잠을 자는 시간을 활용해 매일 4, 5시간씩 그림을 그린다. 요즘 작업 중인 그림은 영화 '어벤져스'에 나오는 캐릭터들.
표 씨 옆에는 휴대폰 액정에 다운받은 캐릭터 '헐크'가 있다. 거실 바닥에 앉은 채 캐릭터를 보면서 그림을 그린다. 오른발 엄지와 검지 사이에 샤프 연필을 끼워 스케치 작업을 한다. 발이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머리'가슴'손 부분의 형태가 잡힌다. 머리카락의 세밀한 부분도 발가락의 미세한 동작으로 척척 그려낸다. 왼발 발가락 사이에는 지우개가 끼워져 있다. 스케치가 잘못됐을 경우 왼발을 사용해 지우기 위해서다. 점차 '헐크' 그림이 모양을 갖추어가자 실제 캐릭터와 흡사했다. 손이 아닌 발로 이렇게 정교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선과 명암 등 세밀한 부분을 그리는 게 가장 힘들어요. 발로 힘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그가 그리는 족화는 주로 만화나 영화 속에 나오는 캐릭터다. 애망원에 살던 7, 8세 때부터 혼자서 만화 캐릭터 그리기를 좋아했다. 대구보건학교에 다니다가 초교 3학년 때 성보학교로 전학한 이후에도 계속 그림을 그렸다. 지금껏 완성한 그림만도 영화 '트랜스포머' 포스터와 일본 만화 '흑집사' 캐릭터 등 100여 점에 이른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
"영화 '트랜스포머'의 로봇 캐릭터를 완성하는 데 2개월이 걸렸어요. 로봇 부품이 너무 세밀해 헷갈렸어요. 그림을 그리다 지우개로 지우기가 다반사였죠.
지난해 가을 성보원 바자회를 잊을 수 없다. 15년 동안 그림을 그렸지만 돈을 받고 판매하긴 처음이었다. 바자회에 온 한 미군이 영화 '트랜스포머' 캐릭터에 감동해 무려 25만원의 돈을 지불하고 사갔다는 것. 올해 바자회에도 영화 캐릭터 몇 점을 그려 내놓을 생각이다.
요즘 그림 실력이 뛰어난 전문 화가한테 본격 그림 지도를 받고 있다. 박성기'김건예 화가가 붓과 연필로 묵화나 사실화 등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3년째 돕고 있다. 두 화가는 "형민 씨가 예술 분야에 천부적 재능을 갖고 있어 잘만 지도하면 훌륭한 화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인터넷에 유행하는 '웹툰' 만화도 도전해볼 계획이다. 또 기회가 되면 한국화'서양화 등 폭넓은 그림공부도 하고 싶다고 했다. 내년 가을에는 개인전도 열어볼 생각이라는 것.
"대학에 진학해 체계적인 공부도 하고 싶지만 교양과목이 부담되네요. 미술 공부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컴퓨터 사용도 일반인 못지않다. 일반 자판과 마우스를 사용하는 그는 타자 실력이 1분에 150타 정도다. 메일 검색이나 컴퓨터 게임도 간간이 즐기며, 컴퓨터 그래픽 운영 기능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비록 두 팔을 못 쓰지만 하모니카 연주 실력도 대단하다. 특수 제작된 3줄 하모니카를 목에 걸고 부는 음색은 일반인을 놀라게 한다. 3년째 하모니카를 배워서 '유 레이즈 미 업' '시계바늘' 등 10여 곡을 연주할 수 있다고 한다. 성보원 하모니카 연주단 리더이기도 한 그는 각종 행사에 초청받아 매년 10여 차례 연주 발표를 하고 있기도 하다.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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