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뇌병변 아들과 암투병 엄마

"아들 돌봐야해요" 암수술도 미룬 母情

진수는 친구가 없다. 태어날 때부터 아파 여태 한 번도 학교에 가보지 못했다. 진수의 유일한 친구는 엄마 홍경숙 씨. 주변 자극에 어떤 반응도 하지 않던 진수가 엄마 목소리가 들리자 조용히 엄마 손을 꼭 잡았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진수는 친구가 없다. 태어날 때부터 아파 여태 한 번도 학교에 가보지 못했다. 진수의 유일한 친구는 엄마 홍경숙 씨. 주변 자극에 어떤 반응도 하지 않던 진수가 엄마 목소리가 들리자 조용히 엄마 손을 꼭 잡았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진수야, 졸리니?"

4일 오후 대구 북구 태전동 한 요양병원 병실. 어머니 홍경숙(43'대구 북구 태전동) 씨가 아들 김진수(13'뇌병변장애 1급) 군에게 다정하게 묻자 진수는 말없이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고는 이내 잠이 들었다. 진수는 지금 뇌병변장애 1급으로 감정표현이 전혀 불가능한 상태다. 경숙 씨도 건강한 몸이 아니다. 경숙 씨는 2010년 7월 유방암과 갑상선암 판정을 받고 투병중이다.

◆"애가 숨을 안 쉬어요!"

진수는 태어난 지 2개월 만에 뇌출혈로 인한 뇌병변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진수가 100일도 안 됐을 때였는데 손발을 만져보니 아기 손발 같지 않게 뭔가 뻣뻣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대학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뇌출혈이라 하더군요."

진수는 그때까지만 해도 비록 몸은 불편했지만 다른 사람의 소리도 알아듣고 웃음도 지을 줄 알았다. 경숙 씨는 진수를 위해 재활치료도 게을리하지 않았었다. 그러던 2010년 4월 어느 날, 경숙 씨는 급하게 진수를 응급실로 데려가야만 했다.

"진수가 누워있는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가보니 애가 숨을 못 쉬고 있더라고요. 급하게 응급실로 데려가 겨우 살아나긴 했지만 결국 뇌 손상으로 더 이상 성장이 불가능하다더군요."

아들의 장애를 인정하는 것도 힘든데 경숙 씨는 또 한 번 좌절해야 했다. 대부분의 시설에서 중증 환자인 진수를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병원과 복지시설 등을 알아봤으나 24시간 진수 옆에서 간병을 할 여건이 되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다행히 집 근처 요양병원에서 수락을 받고 2010년 7월부터 지금까지 이곳에서 진수를 돌보고 있다. 요즘 진수는 몸 전체에 튜브를 꽂고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호흡곤란 증세 때문에 호흡과 가래를 빼기 위해 목에 구멍을 내 튜브를 꽂았고, 배에도 튜브를 연결해서 영양을 공급하고 있다.

◆엄마의 병

불행은 경숙 씨한테도 찾아왔다. 진수를 입원시키고 난 뒤 갑자기 가슴이 바늘로 찌르는 듯이 아파왔다. 이따금씩 그런 증상이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고통을 참을 수 없어 결국 대학병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경숙 씨는 유방암 4기와 갑상선암 판정을 동시에 받았다.

"암 진단을 받고 나서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진수였어요. 내가 만약 잘못되면 진수는 누가 돌봐주나 하는 생각에 잠을 잘 수가 없더라고요."

경숙 씨는 병원의 권유로 서울 아산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갑상선암은 지난해 8월 수술을 마쳤지만 병원에서는 "재발 가능성이 있으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픈 몸으로 24시간 아들을 간호하면서도 한 달에 한 번은 암 치료를 위해 서울로 간다. 호르몬 주사를 맞고, 암이 전이되지 않았는지 검사를 받기 위해서다. 편하고 빠른 KTX가 있어도 비싼 차비 때문에 서울에 갈 때마다 고속버스를 타다 보니 몸과 마음이 함께 지친다.

병원에서는 경숙 씨에게 유방암 수술을 권하고 있지만 엄마 손길만 기다리는 진수를 보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는 "내가 누워 있으면 진수를 제대로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결국 약물치료로 버텨보기로 결정했다"며 "내 몸이라도 건강했으면 진수를 더 잘 챙겼을 텐데 그러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고 고개를 숙였다.

◆숨 막히는 가장

경숙 씨 가족의 생계는 남편인 김성호(49) 씨가 맡고 있다. 일용직 목수로 일하는 성호 씨의 월급은 100여만원. 여기에 기초생활수급자 생계급여를 보태 일곱 식구가 먹고산다.

하지만 일용직 근로자인 성호 씨의 월급이 일정치 않은데다 이 돈마저 대부분 진수와 경숙 씨의 병원비로 지출된다. 남은 돈으로 중학교 3학년인 큰아들과 초등학교 1학년인 막내아들, 그리고 결핵과 간암 등으로 몸져누워있는 진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부양해야 하기에 성호 씨가 지고 가야 할 부담이 너무 크다.

설상가상으로 예기치 않은 빚까지 생겼다. 성호 씨가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빚 2천만원이 고스란히 넘어왔다. 경숙 씨는 "진수 병원비로 매달 30만원씩 드는데다 기저귀와 물티슈 같은 물건을 사는데도 매달 10만원 이상 들어간다. 거기에 내가 한 달마다 서울에 가서 치료받는 비용과 각종 생활비를 합치면 빚은 갚을 엄두도 못 낸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진수가 처음 병원에 입원할 때보다 상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주변 자극에도 반응이 없었지만 지금은 어머니인 경숙 씨의 목소리에는 조금씩 반응을 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동생과 함께 초등학교에 입학, 일주일에 두 번씩 특수교육 담당교사가 병원을 찾아 진수를 돕는다. 담당교사 최정미(47'여) 씨는 "경숙 씨와 진수 모자를 만날 때마다 항상 밝은 표정이어서 오히려 힘을 얻고 간다"고 말했다. 경숙 씨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언젠가는 저도 진수도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열심히 진수 돌보고 건강 챙길 거예요."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매일신문'대한적십자사 공동기획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