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공존의 강, 희망의 강] (15)미국4-무너지는 런던 브리지, 미국 옮겨 관광지 조성

미국이 사온 것은 낡은 다리가 아닌 역사 '스토리텔링'

'런던 다리가 무너져요. 무너져요. 무너져요. 나의 사랑스런 아가씨! 쇠막대로 다리를 지어요.(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falling down, falling down. My fair lady! Build it up with iron bars.)

누구나 한 번쯤은 흥얼거렸음 직한 영어 동요 가사다. 이 동요에는 런던의 명물, '런던 브리지'가 등장한다. 동요 소재가 될 정도로 런던 브리지는 영국인들에게 유서 깊은 다리이다. 런던 브리지는 1750년 웨스트민스터 다리가 지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템스 강을 가로지르는 유일한 다리였다. 런던 브리지는 튼튼하지 못했다. 영국인들과 로마인들이 세운 돌다리는 물론이고, 색슨족이 만든 나무다리는 홍수에 번번이 떠내려갔다.

드디어 1799년, 걱정 안 해도 될 만큼 튼튼한 화강암 다리가 구상된다. 1825년 착공돼 1831년 개통된 런던 브리지는 폭 10.67m, 길이 306m에 무게 13만t의 위용을 자랑했다. 영국인들은 이제 런던 브리지가 무너지는 걱정에서 벗어나는 듯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서면서 새로운 시름 거리가 생겼다. 이번에는 홍수가 아니라 자동차 때문이었다. 늘어나는 자동차 통행량 때문에 다리가 침하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 당국은 고민 끝에 새 다리를 짓기로 한다. 문제는 재원 조달과 기존 다리의 처리였다. 고심 끝에 1967년 시 당국은 런던 브리지를 경매에 내놓기에 이른다.

◆런던 브리지 수송 대작전

이 소식을 듣고 무릎을 친 사람이 있었다. 미국 미주리 출신의 기업가 로버트 맥컬럭(1911~1977)이었다.

'맥컬럭 동력톱'(McCulloch Chainsaw)사의 소유주이자 항공사, 정유회사, 부동산개발회사 등을 소유한 그는 콜로라도 강물을 막아 만든 하바수 호수(Lake Havasu) 호반 지역 14㎢를 구입해 여러 사업을 벌이고 있던 차였다.

그는 1940년대까지 미 공군의 비상착륙기지로 활용되던 이 사막 땅의 부동산 가치를 높이고 싶어 했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풍 마을을 지어 디즈니랜드에 버금가는 명소를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운 그는 런던 브리지가 그 단초 역할을 할 명물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

1968년 그는 246만달러를 제시해 런던 브리지를 사들인다. 무모하다는 소리를 들은 시도였다. 무엇보다도, 이 거대하고 육중한 '골동품'을 옮기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런던 브리지의 화강암 석물 하나하나에 일련번호를 적은 뒤 분해해 1만6천㎞ 바다를 배로 실어 나르고 미국 땅에 도착해서는 트럭으로 옮기는 방법이 동원됐다.

강이나 해협을 건너는 수단으로 만들어지는 여느 다리와 달리, 미국에 온 런던 브리지는 '강(운하)을 거느리는' 호사를 누린다. 맥컬럭은 사막 땅 위에 런던 브리지를 조립해 세운 뒤 교각 아래 땅을 파게 했다. 런던 브리지 밑을 흐르는 폭 300여m, 길이 1.6㎞ 운하는 그렇게 탄생했다. 운송과 조립에는 다리 구입비의 3배 가까운 700만달러가 들었다. 배보다 배꼽이 컸던 셈이다.

드디어 1971년 10월 10일 많은 사람들의 축하와 환호 속에 런던 브리지 재조립 개통식이 열렸다. 이 역사적인 개통식에는 런던시장도 참석했다. 미국에 있는 런던 브리지를 보는 런던 시장의 눈에는 아쉬움과 부러움 등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으리라.

◆애리조나의 명물 런던 브리지

런던 브리지가 있는 곳은 애리조나 주의 레이크 하바수 시티(Lake Havasu City)이다. 라스베이거스에서 240㎞, 로스앤젤레스에서 480㎞ 떨어진 작은 휴양도시이다.

처음에는 모두들 무모한 짓이라고 폄하했지만 레이크 하바수 시티로 옮겨진 런던 브리지는 애리조나 주에서 그랜드 캐니언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됐다. 도시의 대표적 관광 상품을 만들겠다며 화강암 다리를 통째로 옮겨온 발상과 배포가 놀랍기 그지없다. 인구 5만여 명 남짓한 소도시 레이크 하바수 시티는 런던 브리지를 필두로 맑은 호수, 아름다운 호반을 자랑하는 휴양지로 연간 75만 명의 방문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런던 브리지는 영국의 예술혼과 미국의 도전 정신이 배어 있는 골동 건축물이다. 런던 브리지 위에는 미국 성조기와 영국 국기, 애리조나 주 깃발이 나란히 나부낀다. 왕복 2차로와 보도는 24시간 무료로 개방되고 있었다.

레이크 하바수 시티 경제개발조합(PED)의 대표 개리 켈로그 씨는 "처음 런던 브리지는 매우 더러웠는데 이곳으로 옮겨진 후 저절로 깨끗해져 영국인들이 와서 보고는 깜짝 놀란다. 이곳의 강렬한 햇볕과 깨끗한 공기가 자연 정화를 시킨 것"이라며 자랑했다.

레이크 하바수 시티를 디즈니랜드에 버금가는 유럽풍 마을로 만들겠다는 맥컬럭의 꿈은 완전히 실현되지 못했다. 그의 기업이 도산하면서 그의 자산이 금융회사에 인수되고 만 것이다. 자신의 꿈이 실현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맥컬럭은 1977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쓸쓸히 눈을 감는다.

그러나 맥컬럭의 도전과 혁신 정신은 살아남았다. 그가 타계한 이듬해(1978년) 레이크 하바수 시티는 시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기업가가 도시의 초석을 놓고 유명한 관광명소로 거듭난 보기 드문 사례를 그는 제시했다. 1990년대 중반 레이크 하바수 시 당국은 맥컬럭을 추모해 런던 브리지 입구에 동상을 세웠다.

미국 레이크 하바수 시티에서 글'사진 김해용기자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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