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개혁' 이후 신분제는 한국 사회에서 철폐되었지만, 사회학적인 관점이든 국민 정서든 간에 우리가 계급사회에 살고 있음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사회가 고도 성장기였던 시점에서는 성장의 바람을 타고 기회를 쟁취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안정기에 접어든 현 시점에서는 그마저도 쉽지 않다.
일례로 '로스쿨'의 천문학적인 학비나 외교관 특채 과정에서 확인된 고위 공직자 자녀에 대한 내정 의혹들은 서민 가정 자식들의 마지막 보루였던 '고시'마저도 무력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최후의 사다리를 걷어찬 격이라 할 수 있다.
영화계의 현실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예술분야 자체가 일정 정도 이상의 여건이나 경제력을 요구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식적인 일이겠으나 그나마 영화분야는 굉장히 평등한 시스템을 유지해왔다. 많은 예술분야가 학맥이나 인맥 등에 큰 영향을 받는 것에 비해 영화는 대중평가에 가장 근접한 분야인 만큼 '실력'이 최우선시되어 왔던 것이다. 이에 따라 고졸 출신 감독이나 비전공자들이 얼마든지 스크린의 꽃이 될 수 있었고 필자 역시도 얼마 전까지 영화가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매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영화를 전공할 수 있는 대학이 전국에 6개 정도밖에 없어 많은 재능있는 영화 지망생들이 다른 학문을 전공하면서 영화계 진입을 시도하는 상황이었지만 최근에는 수십 곳의 대학에 영화전공이 개설되어 있어 재능 유무를 떠나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지망생들은 관련 학과에 진학하고 있다. 또한, 국가에서 운영하여 수업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최고 수준의 영화교육기관들은 과거에 재능 있는 비전공자들의 훈련장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수재들을 확보하거나 기존 영화학교 출신자들이 스펙을 높이는 공간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충무로의 진입 장벽도 높아지는 추세다. 기존에는 '도제 시스템'의 막내 스태프가 취업과 동시에 교육이 시작되는 방식이었지만 최근에는 훈련된 전공자들을 선호함에 따라 학비가 부족해 관련 전공으로 진학하지 못한 지망생들은 해당 분야에 진입 자체가 불투명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영화학교가 몇 안 되던 시절 전공자와 비전공자로 구분되던 구획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관련 전공으로 인해 명문과 비명문으로 구분되고 있다. '골품제' 양상까지 띠고 있다. 심지어 산업의 영세성으로 인한 저임금 때문에 지방대학 영화전공 졸업생들은 거주비 등 생활비 문제로 충무로 진출 자체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대 사회에서 대중예술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영화가 이를 만드는 이들에게는 점점 '사치'가 되어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 필자를 고민스럽게 만든다.
영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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