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줄 알았으면 안심연료단지로 이사 오지 않았어요. 이사 오고 난 뒤 주민들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5일 오후 연탄공장과 레미콘공장 등이 몰려 있는 대구 동구 안심연료단지 내 율암 7통 경로당. 유봉선(73'여) 씨가 아픈 다리를 만지며 혼잣말을 했다. 유 씨는 이내 가방에서 커다란 약 봉지를 꺼냈다. 유 씨는 "이 놈의 약도 지겨워"하며 한숨을 내쉬고는 약을 먹었다.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기침을 멈추기 위해서다.
유 씨는 42년 전 오빠 내외와 이곳으로 이사 왔다. 당시 주변엔 온통 사과밭이었고, 도랑에는 깨끗한 물이 흘렀다. 하지만 평화롭던 유 씨의 일상은 1년 만에 깨졌다. 마을에 연탄공장이 들어서면서 연탄 공장에서 불어오는 먼지가 마을을 '회색빛'으로 변했다.
공기가 탁해지자 과수원은 문을 닫았고, 뒤이어 레미콘과 시멘트 공장이 들어왔다. 연탄공장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고, 풀과 나무 위에는 희뿌연 모래 먼지가 수북이 쌓였다.
마당에 빨래를 마음대로 널 수도 없었다. 공장에서 불어오는 먼지 때문에 옷가지가 금방 시커멓게 변하기 때문이다.
유 씨 부부의 두통과 기침이 심해진 것도 공장이 들어선 뒤부터다. 수시로 가래를 뱉지 않으면 숨쉬기가 어려웠다. 잦은 기침으로 기관지가 약해져 감기는 늘 달고 산다.
유 씨 남편은 폐가 나빠지고 간암까지 걸려 9년 전 결국 숨졌다. 유 씨는 "약값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파출부와 막노동 등 해보지 않은 일이 없다"면서 "하루라도 먼지와 소음에서 벗어난 곳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기자가 이날 찾은 경로당에 모인 8명의 노인 모두 건강이 좋지 않았다. 올해 초 대구가톨릭대병원에서 주민 18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X-선 촬영 검사 결과 35명이 폐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도 병원을 다녀왔다는 신점태(70'여) 씨는 "동네에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 매일 병원에 다녀야 하고 남편도 폐에 물이 차 병원에 입원까지 했었다"고 했다.
평덕내(70'여) 씨도 남편이 진폐증에 걸려 2년 전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건강했던 남편은 한 달 넘게 기침을 하더니 갑자기 숨졌다는 것.
평 씨는 "의사가 남편의 폐에 시커먼 연탄가루 같은 것이 쌓여 있다고 했다"며 "약을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임정임(72'여) 씨도 한때 죽을 고비를 넘겼다. 임 씨는 늘 가슴이 벌렁거리고 입맛이 없었다고 했다. 밤새 이어지는 기침으로 잠들기도 어려웠다. 임 씨는 3년 전 급성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 후에도 여전히 몸이 좋지 않아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는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뇌종양 판정을 받은 것.
임 씨는 수술 후유증으로 매일 60알의 약을 먹어야 하고, 일주일에 3, 4번은 병원에 가야한다. 한 달 70여만원의 병원비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임 씨는 "하루빨리 동네에 기침 소리가 멎고 살기 좋은 곳이 됐으면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