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과 '1984'로 널리 알려진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읽었다. 이 작품은 영국의 산업도시인 북부지역, 그 중에서도 탄광촌 광부들의 노동조건과 삶을 생생하게 묘사한 르포르타주이다. 오웰은 한 단체의 의뢰를 받아 1936년 1월부터 3월까지 두 달간 영국 북부 산업지대 일대를 집중적으로 조사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그는 책의 1부에서 탄광지대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조건에 대해 생생하게 묘사한다. 문명의 기반인 석탄을 캐기 위해 지옥 같은 땅굴 속에서 목숨을 걸고 노동을 하지만 천대 받는 광부들의 모습을 전하면서 그들 없이 고상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자는 없다고 일깨운다.
노동계급은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벌레가 우글거리거나 지붕이 새는 것을 불가항력으로 여기고 살아가지만, 번듯한 집이 주어진다면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꾸려 나갈 것이라고도 말한다. 노동계급이 거주하던 슬럼을 헐어버리고 재개발을 하는 과정에서 거주민들이 누려온 삶이 박탈되는 공동체 소멸의 문제를 우려하기도 한다.
이러한 부분은 문학적인 감동을 줄 뿐 아니라 충실한 역사적 기록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래서 문학뿐 아니라 역사학 분야 학자들에 의해 당대의 역사자료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고 한다.
2부는 자신의 성장배경 및 영국의 계급문제와 당대에 대한 정치적 견해를 담고 있다. 당시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적잖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조지 오웰이 이 책을 쓰던 무렵은 대공황기였다. 가장 심각한 사회적 이슈는 대량실업 문제였다. 정치적으로는 유럽 여러 나라에서 파시즘이 득세하고 있었고, 영국에도 그 세력이 만만찮게 힘을 얻던 시기였다. 이즈음, 밑바닥 사람들의 생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던 오웰은 사회주의에 흥미를 느꼈고 사회주의자들과 많은 교류를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중산층 사회주의자들 상당수가 속으로는 계급적 편견을 버리지 못하는 속물이고, 기계 숭배자이며, 샌들을 신는 등 별난 취미를 뽐내고, 괴상하고 어려운 말을 쓰기 좋아하고, 이론적 독선에 빠져 인간다움에 대해서는 망각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많은 중산층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고 개탄한다.
조지 오웰은 스스로 좌파 지식인임을 인정하면서도 좌우의 이념을 넘어 사회주의, 자본주의, 파시즘, 산업화를 전체주의라는 하나의 맥락으로 보았다. 그는 영국의 1930년대를 반동의 시기로 보았고, 사회주의는 바보들만 지지하고 똑똑한 인간들은 냉소나 우려만 하고 있는 현실을 보며 파시즘이 지배하는 전체주의적 미래를 두려워했다. 이러한 경계심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오웰은 민주정권을 뒤집기 위해 파시스트 쿠데타를 일으킨 스페인으로 건너가 직접 파시즘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 이때의 경험은 '카탈로니아 찬가'에 나타나 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였던 오웰이 그토록 염려한 것처럼 얼마 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유럽 전체는 비참한 전쟁터로 변했고, 서구 문명은 일찍이 없었던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
조지 오웰은 상층가정에서 태어나 최고급 사립학교인 이튼스쿨을 다녔지만 경제적 이유 때문에 명문대 진학을 포기하고 자원해서 식민통치기구인 버마(현재 미얀마)경찰에서 일했다고 한다. 하지만 식민 제국주의에 환멸을 느낀 그는 5년 만에 영국으로 돌아와 작가가 되었다.
오웰은 식민지 경찰로 일한 이력에 대한 죄책감으로 얼마간 자발적인 부랑생활을 했으며, '모든 피압제자는 언제나 옳으며 모든 압제자는 언제나 그르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오웰이 노동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갖게 된 것은 식민제국의 경찰 간부로 일하며 식민지 백성을 억압한 죄과에 대한 처절한 회한의 결과였다.
시대를 증언하고 잘못된 권력과 지식인을 향해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으며, 삶과 행동으로 스스로 민주주의자임을 증명한 조지 오웰 같은 이가 지금 이 시대에 절실히 그립다.
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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