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혼이 이끄는 대로 그린 그림이다. 밑그림도 없고, 미리 구상하는 과정도 없다. 그저 붓을 들면 자연스럽게 몇 시간이고 오로지 그림만 그린다. 전혀 새로운 이미지다. 한번도 본 적 없는 이미지다. 50년 이상 서예의 한길을 정진해온 원로 서예가 남석 이성조의 손끝에서 나온 그림이다. 벌써 1년 8개월간 매일 6시간씩 몰두해 그려왔다.
"제목도, 주제도 모르겠어요. 나의 손을 빌려 누군가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해요."
서예는 문자라는 약속된 기호에 정신을 담아 아름답게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작가, 그것마저 버렸다.
남석은 먹의 검은 색과 흰 여백, 그리고 삼원색을 주로 사용한다. 동양화 물감과 먹, 그리고 붓으로 수만, 수십만 번 점을 찍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먼 우주 같기도 하고, 생명의 신비를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오로지 자연스러운 '의지'에 의한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어 했다. "이 작품이 손끝으로 흘러나오기까지, 50년 이상 붓과 함께 해왔어요. 작가로서 경전을 수도 없이 썼습니다. 그리고 20년간 산 속에 홀로 칩거생활을 해왔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응축된 것이 이 결과물이 아닐까 싶네요."
그에게 요즘 모든 것이 새롭고 신비롭다. 48세에 팔공산 공동묘지를 사서 공산예원을 지은 것, 칩거를 하게 된 것, 6만9천384자의 묘법연화경 병풍을 3년 6개월간 써서 완성한 것 등 돌아보면 모든 것이 '절대자의 의도'같다.
50년 이상 붓글씨를 써온 그가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도 그렇다. 164폭 묘법연화경 병풍을 집에 모셔두고 백일기도를 할 때였다. 2010년 10월쯤 홀연 글씨를 쓰기 싫고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처음에는 한지에 먹으로 몇 개월 동안 동그라미만 미친 듯이 그렸다. 자연스럽게 동그라미의 형상이 조금씩 변했다. 누군가 한지 대신 캔버스에 그려보라고 가져다주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오랫동안 해로해온 부인과 사별하는 큰 슬픔을 겪기도 했다.
여러 명의 평론가와 작가들이 봤지만 누구도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이미지'라고 말했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평가를 받고 싶어요. 오랫동안 침잠해서 그림을 그렸는데 사람들은 이 그림을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해요. 나도 미처 알지 못하는 세계인데 말이지요."
그는 원본은 절대 공개하지 않고, 원본과 흡사하게 제작한 판화작품만 공개할 예정이다.
한편 남석은 시민들에게 가훈을 써주기로 했다. 매주 금요일 오후 2시부터 6시 사이에 공산예원을 방문해서 미리 예약하면 화선지 1/4, 10자 이내로 가훈을 써준다.
"마지막 보시를 하고 싶어요. 내년쯤 사제간 전시회를 열고 그동안 작품세계를 정리하고 싶습니다."053)982-9600.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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