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해리 포터' 시리즈를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성서(聖書'Bible) 다음으로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해리포터'는 무명작가인 조앤 K. 롤링을 일약 유명인으로 만들었다. 그녀에게 명예와 부를 가져다주었다. 조앤 롤링은 기차가 시골 한복판에서 고장 나 멈추는 바람에 4시간 동안 무료한 시간을 달래려고 상상의 나래를 편다. 그런 결과물이 '해리포터 시리즈'다. 그녀는 이때 얻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장소와 인물을 설정하고 살을 붙여 책을 펴냈다. 결과적으로 누구도 상상 못 한 일이 벌어졌다.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최근에는 우리 사회에서도 스토리텔링이 대세다. 우리 주변에도 스토리텔링의 소재들이 무궁무진하다. 특히 산과 계곡 그리고 사찰'암자 등은 스토리텔링의 보고(寶庫)다. 천년고찰 수도암에도 신통방통(?)한 얘기가 전한다.
◆칠 척 불상을 한달음에 옮겨 놓은 전설
석가탄신일을 지나고 다시 수도암을 찾았다. 절 입구에는 불두화(佛頭花)가 만개해 자태를 뽐낸다. 꽃이 부처님의 곱슬곱슬한 머리를 닮아서 불두화라고 한다. 수도암은 하안거(夏安居'승려들이 4월 보름 다음날부터 7월 보름날까지 3개월간 한곳에 모여 일체의 외출을 금하고 수행에만 전념하는 것) 결제를 하루 앞둔 때문인지 스님과 불자들로 북적였다. 수행처인 관계로 좀처럼 스님들이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데 이날은 스님들도 분주한 모습이다. 큰 법당도 활짝 문을 열어 놓고 선객을 맞고 있다. 법당에서 바라본 수도산은 녹음이 짙다.
먼저 보물 제307호인 대적광전 석조비로자나불에 관한 이야기부터 보따리를 풀어본다. 도선국사가 옥녀직금형 명당에 터를 잡고 스님의 수행처인 전각과 탑을 조성했다. 그리고 이에 걸맞은 석불을 조성하려고 했으나 사방을 뒤져도 마땅한 바윗돌을 찾지 못했다. 마침 여기서 산등을 몇 개 넘어 가창군 가북면 북석동(속칭 불당골)에서 알맞은 돌을 발견하곤 석공을 불러 불상 조성을 마쳤다. 그런데 불상 높이가 칠 척이 넘어 이를 수도암까지 운반하는 일이 큰 걱정이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아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스님과 석공들이 목욕재계하고 7일기도를 올리자 회향(廻向)하기 전날 노승이 나타나 "부처님을 모시고 갈 테니 모두 따라오기만 해라"고 말한 뒤 큰 석불을 등에 업고 나는 듯이 산을 오르고 등을 넘었다. 마침내 수도암 근처 '아홉살이'에 이르렀는데 칡넝쿨에 걸려 넘어질 뻔하였다. 불상을 내려놓은 노승이 즉시 산신을 불러 "부처님을 모시는데 칡이 방해를 해서야 되겠느냐. 절 주위에 칡을 없애도록 해라"고 호통을 쳤다. 이때부터 수도암 주변에는 칡이 자라지 않고 산등을 넘어서면 칡넝쿨이 무성하다니 무슨 조화인지 모를 일이다. 수도암 선원장 원인 스님은 "노스님은 문수보살의 화신으로 표적을 그와 같이 남긴 것"이라는 설명이다.
◆신통방통한 나한들의 불가사의한 이야기
수도암 나한전은 모셔진 나한(羅漢)들이 영험하기로 소문이 나 여러 얘기가 전해온다. 나한은 조선시대 초기에 조성했다고 전하나 정확한 조성 연대에 대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옛날 대적광전 뒤에는 큰 느티나무(혹은 전나무)가 서 있었다. 괴목이 기울게 자라더니 급기야 법당의 기와를 상하게 해 비가 새어 스님들이 큰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나무를 베어 버리려 했으나 건물이 상할 것을 염려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만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다른 스님은 출타를 하고 노승 한 분이 절을 지키고 있다가 삼매에 들었다. 그런데 꿈결 같은 소리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깔깔대며 웃는 동자 소리와 박장대소하는 사람 소리가 들려 황급히 법당 앞으로 나와 보니 그렇게 고민하던 괴목이 뿌리째 뽑혀 있었다. 정신을 수습한 스님이 이상한 생각이 들어 나한전을 들여다보았다. 나한전 안의 나한들의 어깨에는 나뭇잎이 얹혀 있고 손에는 흙이 묻어 있었다고 전한다. 스님들은 나무를 잘라 겨울철 땔감으로 사용하고 나무 밑둥치는 근년까지 남아있었다. 선원장 스님은 "1969년 선원을 지을 때 나무가 뽑힌 자리에 큰 웅덩이가 있었다"며 "나무가 쓰러지면서 법당 앞 서쪽 석탑에 부딪혀 탑 일부가 부서졌으며 요사채 앞에 디딜방아가 있었는데 나무가 덮쳐 못 쓰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큰 괴목이 넘어지면서 법당은 아무런 손상을 입히지 않아 온전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해진다. 추운 날 거창의 나이 든 불자가 공양미를 갖고 힘들게 산을 넘어오는데 한 동자승이 나타나 "수도암 스님이 저를 보내 공양미를 받아 오라고 했습니다"라며 쌀가마니를 메고 쏜살같이 산을 올라갔다. 고맙게 여긴 노인이 절에 도착해 보니 마루에 쌀가마니만 덩그렇게 놓여 있을 뿐 조용하고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동자는 없고 스님만 선실에서 공부를 하는지 기척이 없었다. 큰 소리로 스님을 불러 자초지종을 얘기하며 "누군데 그 무거운 쌀가마니를 어깨에 메고 나는 듯이 왔을까요"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스님은 "따라오시오"라며 앞장서 노인을 데리고 나한전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나한전 맨 끝 조그만 동자승 어깨에 짚 검불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스님은 "다른 스님들이 출타하고 나만 절을 지키고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식량이 떨어져 걱정을 하고 있었다"며 "처사님께서 무겁게 공양미를 지고 오는 것을 보고 이곳 동자승께서 받아온 게지요. 큰 복을 받으실 겁니다"라고 했다. 또 수도암 아래 수도리 마을에 동지를 맞아 팥죽을 끓이고 있는데 동자승이 나타나 팥죽을 달라고 해 드시고는 수행하시는 스님들이 팥죽을 드실 수 있도록 가져다 달라고 했다는 것. 마을 아낙이 끓인 팥죽을 들고 따라나섰는데 앞서 간 동자승이 암자에 들어간 뒤 보이지 않았다. 아낙이 사실을 스님에게 말하고 함께 법당 안을 둘러보니 동자승 입가에 팥죽이 묻어 있었다는 얘기도 전한다.
이 밖에 6'25전쟁 당시 이곳까지 북한군이 들어왔는데 부처님을 향해 총을 쏜 북한 병사가 그 자리에서 죽은 이야기도 있다. 얼마 전까지 큰 법당 석조비로자나불상 얼굴에 총알이 스쳐 지나간 자리가 벌겋게 녹이 슬어 흉물로 남아 있었는데 최근 녹을 벗겨 내는 보수작업을 했다. 지금도 자세히 보면 왼쪽 뺨에는 눈물자국처럼 흉터가 있다. 또한 스님이 늦잠을 자는 바람에 예불을 모시지 않으면 나한님이 법당 종을 쳐서 잠을 깨우고 경책한 일도 전한다. 가난한 사람이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여 부처가 된 이야기, 기도해서 병 낫고 득남한 이야기 등 영험담이 많이 전해온다.
◆영험에 혹하기보다는 참된 신앙으로 거듭나야
수도암의 얘기에 등장하는 나한은 처음에는 큰 법당 옆에 모셔져 있었는데 1969년 법전 스님이 중창 불사를 하면서 청암사 백련암에 한때 모셨다. 그런데 이 암자에서 수행하는 비구니의 꿈에 나타나 수도암으로 보내달라고 현몽하시어 다시 지금의 나한전으로 모셨다고 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자승도 지금 나한전 왼쪽 맨 끝에 자리하고 있다.
수도암 원인 스님은 "이런 영험은 모두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여 오는 복보이나 여기에만 집착하면 참된 신앙이 되지 않는다. 잘못된 일과 어리석은 일을 참회하고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기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바른 기도를 통해 바른 이치를 알게 되고 바른 생활로 이끌리게 된다. 따라서 모든 어려움이 어려움이 아니며 쉬움도 또한 자연스러워 모든 것에 자유로움을 얻게 될 것이다"는 경계의 말씀을 아끼지 않았다.
글'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사진'서하복 작가 texcaf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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