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하루를 가만히 되짚어본다. 피곤에 가시지 않은 몸을 일으켜 출근을 하고, 정신없이 일하고, 좌절하고 화내고, 가끔 웃다가 지친 몸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잠시 시간을 보내고 잠자리에 든다.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소시민의 일상이다. 그렇다면 죽음의 문턱에 선 순간에는 어떨까? '난 정말 굉장한 삶을 살았구나' 싶을까?
삶은 단순하며 무한 반복된다. 온갖 굴곡으로 복잡하게 보이는 인생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어느 평범한 하루의 패턴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전체 구조는 비슷한 형태의 작은 구조로 끊임없이 되풀이되며 구성된다는 '프랙탈 이론'에 따르면 그렇다.
'나'란 존재를 바꾼다는 건 그토록 어렵다. 아니, '존재'로부터 탈출이란 그저 '판타지'일지도 모르겠다.
지크프리트 렌츠의 소설 '유랑극단'은 이젠뷔텔 교도소에 유랑극단이 찾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주인공 클레멘스와 하네스는 감방 동료다. 독문학과 교수인 클레멘스는 여제자들과 잠자리를 하고 최고 점수를 준 사실이 발각돼 감방에 갇혔다. 하네스는 교통경찰을 사칭해 법규 위반 차량들로부터 돈을 뜯어내다 걸린 사기꾼이다.
어느날, 유랑극단이 교도소에 위문 공연을 온다. 유랑극단은 수감자들을 위해 '미로'라는 제목의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 하네스는 쉬는 시간을 이용해 죄수들을 이끌고 유랑극단 버스를 타고 탈옥을 시도한다. 벌써 3번째 시도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패랭이꽃 축제'가 열리는 '그뤼나우'라는 소도시다. 시민들은 죄수들을, 축제를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유랑극단으로 착각하고 열렬히 환영한다. 하네스의 뛰어난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넘긴 죄수들은 그뤼나우를 문화'예술 도시로 만드는 사업에 동참한다. 클레멘스는 시민대학의 교수직을, 하네스는 향토박물관 관장직을 맡는다.
하지만 탈옥은 백일몽처럼 허무하게 끝난다. 죄수들이 그뤼나우에 남았다는 사실은 교도소장에게 발각되고, 클레멘스의 제자였던 지역 일간지 여기자도 알아차린다. 죄수들은 다른 도시로 떠나기 직전 체포되고 다시 수감된다.
좁은 감방에 같힌 죄수들은 쉽사리 적응하지 못한다. 하네스는 삶의 의욕을 잃고 자포자기에 빠지고, 하네스의 친구 페르디 볼찬은 베겟잎으로 목을 매 자살한다. 교도소장은 다시 유랑극단을 초청한다. 연극 제목은 '고도를 기다리며'. 하네스는 또 한번 탈출을 시도하지만 결국 절호의 기회를 포기하고 감옥에 남는다. "어차피 견뎌내야 하는 것이라면 슬픔을 같이 나눈 사람과 함께 견뎌내는 것이 한결 수월할거요." 하네스의 깨달음이다.
현실은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올수 없는 '미로'이며, 삶은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기약없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슬프지만 사람은 결국 서로에게 기대며 현실을 버텨갈 수밖에 없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