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영업맨 K씨에게 '시간은 금'이요, 시간 낭비는 '범죄'다.
오전 6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운동을 하고, 출근길 차 안에서는 중국어 회화 강의를 듣는다. 오전 임원 회의가 끝나면 각 부서에서 올라온 기획서를 검토하고 점심시간에는 거래처 사람들과 회의 겸 식사를 한다. 오후에는 해외 영업부서와 미팅 후 회의가 이어지고, 국내외 주요 금융시장과 자원 시장 동향을 파악하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야근은 밥 먹듯 하고, 매주 두 차례 대학교 경영대학원 수업도 빼놓지 않는다.
K씨에게 '비즈니스'(Business)란 정말 '비지'(Busy)한 일이다. 짜장면을 주문하고 나무젓가락을 두쪽으로 뜯는 동시에 "아직 음식 멀었냐"고 소리친다는 농담이 농담같지 않다는 그다.
하지만 하루가 저물면 그는 매일 스스로를 자책한다. '왜 난 남들보다 한 시간 더 일찍 일어나지 못했을까', '왜 난 한 발 앞선 영업 전략을 짜지 못했을까', '왜 영업 실적을 기대만큼 올리지 못했을까' 등등. 그에게 '성공'의 기준은 '부의 축적'이며 '슬로라이프'란 "인생의 패배자들이 늘어놓는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
K씨의 사례처럼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에게 부여하는 공통된 목표는 '경제적 성공'에 따른 '부와 풍요'다. 극한의 경쟁주의 사회 시스템은 모든 이에게 '돈'이라는 같은 목적지를 정해준다. 경쟁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의 인생은 가치가 없다는 분위기도 조장한다. 돈을 벌려면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해야 하며, 승리의 요건은 '효율성'과 '능률'이다. 다른 이들보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일을 해내야 '효율적'이며 효율성과 능률성은 '노동생산성'과 직결된다.
효율성의 바탕에는 '시간'이 깔려 있다. '아침형 인간', '시간과 일정 관리술', '시간'공간'인맥 정리법' 등 미디어는 '시간을 쪼개고 나눠쓰라'고 강요한다. 찰나의 틈새도 허락하지 않는 시대. 틈새는 무의미 혹은 부질없음과 연결되고, '해야 할 일'은 무한 증식한다. 아득바득 바쁘게 살면서 인사말도 "안녕하세요"에서 "바쁘신데 죄송합니다만…"으로 바뀔 정도다.
'슬로라이프', '행복의 경제학'으로 유명한 저자 쓰지 신이치는 '슬로라이프를 위한 슬로플랜'에서 '소유하는 것'과 '해야 할 일'의 집단 강박증의 시대에 이별을 고하자고 제안한다. '할 일'을 둘러싼 끝없는 경쟁에 끝을 맺자는 얘기다.
저자는 "이 세상은 '끝 없는 경제 성장'을 테마로 한 드라마의 대단원같다"고 말한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를 미덕으로 '상대보다 더 많은 일을 보다 빨리 해내는 것'을 경쟁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
그 결과가 '과잉의 시대'다. 물건의 과잉, 생산의 과잉, 상품의 과잉, 욕망의 과잉, 경쟁의 과잉, 정보의 과잉 등. 이 모든 과잉을 지탱하는 것은 '할 일'의 과잉이다. '할 일'과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은 갈수록 늘어나고 하나의 '할 일'은 끊임없이 다른 '할 일'을 만들어낸다. 현대인의 '할 일 리스트' 속에는 '하고 싶은 일'은 증발해버리고 '하지 않으면 안 될 일'만 자리잡았다.
저자는 '할 일 리스트' 대신에 '하지 않을 일 리스트'를 만들자고 주장한다. 이른바 '뺄셈의 미학'이다. '하지 않을 일 리스트'는 쓸데없는 일을 잘라내 일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의미가 아니라, '할 일'만을 우선시하는 사회 속에서 '하지 않을 일'을 채워감으로써 효율과 경쟁에 치이는 삶에서 빠져나오자는 뜻이다.
''절대로'라는 말 하지 않기', '쉽게 쓰고 버리지 않기', '버스나 전철에 급히 올라타지 않기', '잠자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기', '텔레비전 보지 않기','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하지 않기', '물건을 줄이기', '무리해서 동기부여를 만들려하지 않기', '타인도 자신도 재촉하지 않기' 등. 저자가 권하는 '하지 않을 일 리스트'는 억지로 시간을 짜내며 스스로를 다그치는 일을 멈추게 할 즐거운 목록이다.
저자는 경제 효과와 효율,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잡담, 잡음, 잡화, 잡무, 잡념 등 '잡것'들이 오히려 삶의 보람이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시간을 충만하게 채워준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할 일'을 놓으면 놓을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자유로워지고, '여기 이렇게 숨쉬고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느끼게 되며 그것을 즐길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256쪽. 1만2천원.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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