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경북 초선의원들 '여의도 입성기'

"서울 물가에 깜짝" 친척집 신세까지, 참모 채용에 청탁 "거절이

4년마다 돌아오는 총선 이후 주목받는 이들이 초선(初選) 의원들이다. 여의도정치에 아직 때묻지 않은 만큼 패기와 열정, 무모함으로 행정부 견제와 개혁 바람에 '소금' 같은 역할을 해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임기를 시작한 19대 국회에서 처음 금배지를 단 의원은 148명. 대구경북(전체 27명)에서도 11명의 지역구 초선의원이 탄생, 지역민들의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다. 서울 생활 2주째를 맞고 있는 이들의 좌충우돌 여의도 입성기를 들어봤다. 유성걸(대구 동갑)'김종태(상주)'김형태(포항남울릉) 의원은 개인적인 이유 등으로 인터뷰에 참여하지 않았다.

◆"서울 물가 억수로 비싸네예~"

이종진 의원(대구 달성)은 국회의원 당선의 영광과 동시에 홀아비 신세가 됐다. 여의도에 숙소를 잡은 뒤 예순이 넘은 나이에 혼자 밥을 해먹고 출근 준비도 한다. 이른 새벽에 방 한 칸(33㎡가량)의 집에서 눈을 뜬 뒤 외로움에 몸서리를 칠 때도 있다. 평생 처음으로 혼자 사는 법을 배우려니 여간 어색한 것이 아니라고도 했다.

이 의원은 집을 마련할 때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대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집값 때문이다. 2년 전 아들이 서울의 한 대학에 입학하면서 학교 인근 원룸을 전세 5천만원에 얻어준 사실만 떠올리고 부동산을 찾았다가 면박만 당했다. 서울에서도 비싼 축에 속하는 여의도에는 5천만원짜리 원룸은커녕 마음에 드는 방은 대부분 전세가가 1억원을 훌쩍 넘었다. 그는 "방 한 칸짜리 집에 1억5천만원을 불러 깜짝 놀랐다"며 "부동산에선 '촌에서 온 노인이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며 씁쓸해했다. 결국 이 의원은 대출이 필요한 전세 대신 월세를 선택하고 국회 앞에 거처를 마련했다.

평생을 대구에서 생활한 김상훈 의원(대구 서구)도 서울의 높은 집값을 톡톡히 체험했다. 다섯 식구 모두 상경하기 위해 여의도 외곽의 아파트를 구하러 한 달을 다녔지만 주머니 사정과는 동떨어진 가격대에 발걸음을 돌리곤 했다. 김 의원은 결국 조금 더 멀리 떨어진 곳으로 눈을 돌려 겨우 전셋집을 구했지만 기존 세입자의 계약기간이 아직 남아있어 당분간 친지 집에 신세를 지는 형편이다. 김 의원은 "대구시청 경제국장으로 있을 때 타지 기업들이 대구 투자를 꺼리는 이유로 땅값을 거론하곤 했는데 서울에 와보니 비교도 안 되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식구 구하기 전쟁

국회의원의 보좌진은 보좌관(4급) 2명, 비서관(5급) 2명, 비서(6'7'9급 각 1명, 인턴 2명) 5명 등 총 9명이다. 특히 초선 의원들에게 '참한' 식구 모시기는 중요한 일이다. 보좌진의 능력에 따라 의정활동 성패가 일정 부분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의원들이 아무나 채용하지는 않는다. 채용 기준도 의원마다 제각각이다. 김희국 의원(대구 중남구)은 보좌진 전원이 지역구 사람이다. 주민들의 소중한 한 표를 통해 당선됐는데 일자리만이라도 돌려주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에서다. 반면 이종진 의원은 '인연'을 중시했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이해봉 전 의원실의 보좌진 4명을 그대로 영입했다. 이 전 의원이 대구시장일 때 서무계장으로 재직하며 함께 일했던 과거 인연을 선택한 셈이다.

윤재옥 의원(대구 달서을)은 보좌진의 '스펙'보다 '소통'을 강조했다. 심층 면접을 통해 의정 생각, 국가 비전 등이 서로 통하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골랐다고 했다. 홍지만 의원(대구 달서갑)은 18대 총선 낙선 이후 백수 시절에 미리 점 찍어뒀던 국회 보좌진을 자신이 당선되자마자 포대에 쓸어담은 케이스다.

초선 의원들은 쏟아지는 구직 청탁을 적절히 거절하는 게 더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국회 보좌진은 보수를 떠나 국회의원실에 소속된 것만으로도 엄청난 '파워'를 발휘한다. 소위 '갑'(甲)의 입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 덕분이다. "낙천'낙선한 선배 의원에서부터 지역구 유지, 고향 선배, 친구 등 많은 곳에서 보좌진 채용 부탁이 들어와 마음 안 상하게 거절하느라 진땀을 흘렸다"는 게 초선 의원들의 하소연이다.

이완영 의원(고령성주칠곡)은 "추천장이 쏟아졌지만 능력이 없는 사람을 뽑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냐"며 "욕을 좀 먹더라도 창의적으로 법안을 개정'제정할 실력을 갖춘 옥석을 고르느라 수일이 걸렸다"고 털어놓았다. 심학봉 의원(구미갑)은 "보좌관 2명만 능력에 따라 채용한 뒤 나머지 식구들은 이들에게 맡겼다"고 했다. 최상의 팀워크를 구축하는게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홍일점 지역구 의원인 권은희 의원(대구 북갑)은 "국회가 바뀔 때마다 옮겨다닌 '철새 보좌진'은 과감하게 배제했다"며 "능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 자주 직장을 바꾸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싫었다"고 귀띔했다.

◆금배지 힘을 느낍니다

당선 이후 이들의 신상에는 당장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심학봉 의원은 구미 한 전통시장 앞을 가로막고 있는 가건물을 예로 들면서 '금배지'의 힘을 실감했다고 했다. 폐허가 되다시피한 가건물을 철거해달라는 시장 상인들의 민원이 1년 넘게 계속됐지만 소유주들의 무대응으로 해결책을 찾지 못하다 국회의원이 나서자 1주일 만에 철거로 가닥이 잡혔다는 것이다. 그는 "20년 동안 공직 생활을 했지만 권한의 범위가 국회의원은 좀더 넓고 깊은 것 같다"고 했다.

국토해양부 차관 출신인 김희국 의원은 "입법권, 예산권, 국정조사권을 가진 국회가 힘이 더 많은 것은 당연하다. 물론 책임감도 더 크다"며 "국회의원 개개인의 힘은 보잘 것 없지만 이것이 당의 이름과 정책으로 채택될 때는 예전과 비할 바가 아니다"고 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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