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일 밤 경북대 북문 대학가. 괴성을 지르는 넥타이 부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젊은이들이 거리에 뒤섞여 있었고, 간간이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도 눈에 띄었다. 밤 12시였지만 술집과 노래방, 카페 건물에 달린 간판 조명과 네온사인은 꺼지지 않고 거리를 낮처럼 환하게 비췄다. 어디에서 오는지 모를 인파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튀김, 떡볶이, 어묵 등을 잔뜩 쌓아 놓고 줄지어 늘어선 노점의 풍경은 아직 이곳이 '한창 때'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기자가 2시간 남짓 거리를 지켜봤더니 이곳을 대학가라고 불러야 할지, 유흥가라고 불러야 할지 자꾸만 헷갈리기 시작했다. 대학문화를 취재하러 왔지만 길거리 어디에서도 상식적으로 대학문화라 부를만한 것은 찾기 힘들었다. 차라리 유흥문화라 하면 취재거리가 다양할 듯싶었다.
새벽 1시 가까이 되자 대학로 도롯가에는 200m가 넘도록 길게 늘어선 택시 행렬이 술에 취한 젊은이들을 차례차례 태우고 있었다. 어디서 쏟아져 나오는지 모를 젊은 손님들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옛 추억만 남은 대학가
경북대 인근에 있는 정모(52) 씨의 술집은 학생 때 드나들던 1980, 90년대 학번 졸업생들이 거의 유일한 손님이다. 직장인이 된 졸업생들은 퇴근 후 삼삼오오 와서 옛날 가요와 팝송을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다 간다. 대학교와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가게가 위치해 있지만 20대 초'중반인 재학생들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 씨는 "이곳은 80, 90년대 대학 문화가 박제된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80, 90년대 학번을 보면 서로를 잇는 연결고리가 있다. 술집에서 트는 김광석, 이문세, 정태춘 등의 음악에 함께 고개를 끄덕거린다. 하지만 이후 세대와는 단절돼 있다. 향유하는 음악도 다르거니와 무엇보다도 요즘 세대는 이런 분위기의 술집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 대학생답게 소박한 분위기에서 사색을 즐기는 대학문화가 아닌 기성세대를 모방한 시끌벅적한 유흥문화를 즐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학가 술집의 특징은 저렴한 가격에 사랑방처럼 오밀조밀 모여 가벼운 담소든 격렬한 토론이든 나눌 수 있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요즘 대학가에서 그런 술집은 찾기 힘들다.
기자가 경북대 북문 대학가를 찾았더니 거리에 붙은 이름이 '북문 로데오'였다. 대구 동성로에 있는 '로데오 거리'에서 이름을 가져다 쓴 것. 더구나 술집 이름까지 판박이였다. 최근 대학가에 프랜차이즈 술집이나 고깃집이 많이 들어서면서 예를 들면 똑같은 업소 명칭과 간판 디자인에 동성로는 1호점, 경북대 북문은 2호점인 식이기 때문이다. 업소 안에 있는 손님들도 동성로와 경북대 북문 대학가는 비슷하다. 회식을 하러 온 와이셔츠 차림의 직장인 무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고깃집도 있었다. 청소년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손님들도 보였다.
계명대 96학번인 직장인 김정호(38) 씨는 "'먹거리촌''학사주점'처럼 이모 같은 주인아주머니가 배고픈 대학생들에게 아낌없이 안주를 내다 줄 것 같은 이름, '달과 6펜스''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처럼 문학적 감수성을 살린 이름의 술집이나 식당을 이제는 대학가에서 찾기 힘들다"며 "대학문화가 변한 것인지 아니면 대학문화가 아예 사라진 것인지, 동성로와 다름없는 유흥가가 된 대학가를 보면 알쏭달쏭하다"고 말했다.
◆문화 결핍증 대학가
경북대에 재학 중인 정진환(25) 씨는 학교에서 록 밴드 활동을 하고 있다. 자주 공연을 하고 싶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다. 일단 대학가에는 공연장이 전무하다. 지역 다른 대학들도 사정은 비슷해서 "지방의 문제인가" 하고 넘기기 일쑤다. 현재 계명문화대 앞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인디밴드 공연장인 '헤비'는 그래서 지역 젊은이들에게는 신기하고 또 믿을 수 없는 사례다.
록 밴드나 연극 등 문화 활동을 하는 대학생들이 대학가에서 공연을 할 수 없는 문제는 대학가에서 공연을 즐길 수 없는 문제로 이어진다. 지역의 한 대학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학생 64%가 대학가를 떠나 문화생활을 즐긴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부족한 문화생활 공간'을 가장 많이 꼽았다.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이 바로 앞 대학가에서 문화생활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터를 잡고 문화 공급처 역할을 했던 서점, 레코드점 등도 인터넷 등을 통해 개인적으로 문화적 욕구를 충족하려는 대학생들의 소비성향 변화로 인해 외면 받다가 대부분 사라졌다. 대학가가 소비 중심의 상권으로 변화하면서 업주들이 높은 임대료 등에 부담을 느껴 가게를 정리하고 떠나야 했던 이유도 있다.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선 것이 카페와 프랜차이즈 음식점 등이다.
◆대학 동아리도 침체
그렇다고 동아리가 대학문화의 허기를 채워 줄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동아리 문화는 지금껏 대학문화를 대표해왔다. 학교 수업만으로 채울 수 없는 배움과 문화 활동, 그리고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욕구를 방과 후 일명 '동방'(동아리방의 줄임말)에 와서 충족했다.
하지만 요즘 동아리 활동을 하는 대학생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기자가 경북대 북문에 서서 오가는 대학생 30명을 붙잡고 물었더니 26명이 "동아리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동아리에 가입한 경험이 있다는 학생 4명 중 2명마저도 취업 준비를 하기 위해 동아리 활동을 쉬고 있다고 했다. 대학교 2학년 박모(21'여) 씨는 "요즘 대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토익, 영어회화 등 취업 준비를 한다. 동아리 활동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이 친구들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에 기자가 "관련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취업 동아리도 얼마든지 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각자 필요에 따라 쉽게 모였다 흩어졌다 할 수 있는 '취업 스터디'가 더 도움이 된다. 괜히 동아리에 발이 묶이면 피곤하기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권준용(25'경북대 신문방송학과 3년) 씨는 "동아리 없이도 다양한 취미 활동을 할 수 있다. 또한 동아리의 장점이 다른 학과 사람들과 교류하며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인데 집단 속에 어울리기 싫어해 혼자 다니는 '아웃사이더' 대학생도 많고, 취업 멘토 등 당장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선배만 골라 교류하는 경향도 있다. 각박한 청년 취업 현실에서 동아리는 다소 비효율적이고 쓸모없는 활동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대학로가 대학로가 아니야
대학로라 하면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서울 종로구에 있는 대학로다. 혜화로터리에서 이화네거리까지 약 1.5㎞ 구간 일대를 가리킨다. 그런데 대학로에는 바로 인접한 대학이 없다. 실은 1975년까지 이곳에 서울대가 있었기 때문에 대학로라는 이름이 만들어진 것이다. 서울시는 1985년 대학로를 문화공간으로 지정했다. 초기에는 주변 건물의 값싼 임대료 덕분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찾아와 길거리'소극장 공연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대학문화, 청년문화를 형성했다. 대학생들은 문화를 즐기는 관객이 되기도, 직접 공연을 펼치는 예술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술집, 노래방, 오락실 등이 들어서며 대학로는 유흥가로 변했고, 대학로 본래의 의미는 점점 퇴색되고 있다.
우리 지역의 대학로도 사정은 비슷하다. 아니, 더욱 열악하다. 서울의 대학로는 의미 있는 과거라도 있지만 지역의 대학로는 달랑 이름뿐이니 말이다. 경북대와 영남대 인근에는 대학로라는 이름의 도로가 있다. 해당 지자체에서 대학문화와 거리를 연계시키겠다며 도로 이름을 지정한 것. 하지만 대학로는 그저 대학 부지와 인접해 있는 도로의 이름일 뿐이다. 대학문화와 연관지을 만한 요소는 찾기 힘들다. 경북대 북문에 인접한 대학로는 혹자에 따르면 '대구에서 술 먹고 놀며 밤새기 좋은 곳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유흥가'이고, 영남대로 향하는 대학로는 대학생들을 태우고 다니는 통학버스가 다니는 도로명일뿐이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사진 = 성일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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