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패션에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최근 각종 매체를 통해 패션을 소재로 다룬 드라마, 오디션 프로그램, 웹툰 등이 큰 인기를 얻고 있고, 인터넷 커뮤니티와 대학 등에서는 '옷 잘 입는 선남'선녀'를 뽑는 콘테스트가 유행이다. 이처럼 '패션'이 화두가 되는 사회 분위기의 바탕에는 "옷 잘 입는 사람은 자기 관리를 잘할 뿐만 아니라 자신감도 넘쳐나는 등 능력과 매력을 모두 갖췄다"고 보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에 공감하는 직장인이 최근 늘고 있는 것. 패션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기능'적 측면에 더해 자기 '개성'도 마음껏 표출하려는 직장인들이 나타나고 있다.
◆직장인 패션, 변화의 바람
요즘 직장인 패션에 변화의 바람이 가장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 놀랍게도 가장 보수적인 복장 규정을 가진 공무원 조직이다. 여름철 들어 간편한 복장으로 에너지 절약과 업무 효율을 높이려는 쿨비즈 패션 운동이 각 공공기관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 '쿨비즈'(Cool-Biz)는 시원하다는 의미의 '쿨'(Cool)과 업무를 의미하는 비즈니스(Business)의 줄임말인 '비즈'(Biz)의 합성어다.
이달 5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는 대구경북 섬유패션기업이 한국패션산업연구원과 함께 만든 '휘들옷'(Whidrott)에 시선이 집중됐다. 경북 풍기 지역 특산물인 전통 인견을 사용, 지역 섬유기업의 특화 기술로 만든 휘들옷 셔츠를 입고 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들이 "가볍다. 시원하다"며 극찬을 했다는 것. 휘들옷은 '산과 들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시원하고 가벼운 옷'이라는 의미다.
행정안전부는 이르면 이달 17일쯤 공무원들의 상의 재킷 착용을 아예 원칙적으로 금지시킬 예정이다. 정장 바지를 입지 않고, 넥타이도 매지 않아도 된다. 면바지에 셔츠만 입고 출퇴근해도 된다는 것이다.
반바지도 허용됐다. 이달 5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남색 반바지와 반팔 체크 셔츠 차림으로 직원들 앞에 섰다. 이날 오후 서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열린 '쿨비즈 패션쇼'에서 박 시장이 직접 패션모델로 나선 것. 서울시는 '원전 하나 줄이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이달 1일부터 직원들에게 반바지와 샌들 착용을 권장하는 쿨비즈 운동을 펼치고 있다.
공무원 복장의 핵심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바로 '단정함'이다. 복장이 곧 공무의 품위, 엄준함, 신뢰성 등을 나타낸다는 것. 그런데 '국가공무원복무규정 제8조 복장 및 복제 등에 대한 규정'에 따르면 '공무원은 근무 중 그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단정한 복장을 하여야 한다'는 문구 외에 별다른 구체적인 지침은 없다. 그래서 단정한 복장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 공무원 세대별로 시각차를 나타내고 있다.
대구의 한 구청에 근무하는 박모(48) 씨는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20여 년 전에는 파스텔 톤의 분홍색 셔츠를 입고 출근했다는 이유로 상관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다. 무채색 셔츠와 단순한 무늬의 타이만 착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공무원이 반바지를 입고 샌들을 신는다니. 어처구니없다"며 "복장이 태도를 바꾸는 법이다. 공직기강 해이에 반드시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1년차 신입 공무원 이모(30) 씨는 "반바지라도 댄디(단정)하게 입으면 문제없다"고 했다. 그는 "피서갈 때 입는 헐렁한 반바지를 입자는 것이 아니다. 수북한 다리털이 보기 싫다면 요즘 간단히 제모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 단정한 반바지는 촌스러운 아저씨의 상징인 '배바지'보다 주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 요즘 공공기관 건물 내부의 인테리어도 색감 있게 바꾸고, 지자체마다 발랄한 디자인의 캐치프레이즈 로고나 캐릭터를 만들어 내걸고 있다. 하지만 공무원 패션은 수십 년 전 '칙칙한 이미지'에서 제자리걸음 중"이라며 최근 공무원 복장의 '혁명적인' 변화 분위기를 지지했다.
공무원 조직에 비해 일반 기업의 패션은 청바지와 운동화 착용 허용, 타이 매지 않기 운동, 자유복 입는 날 지정 등 변화의 바람을 이미 겪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직장 조직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맞춰졌던 패션 담론의 초점이 점차 직장인 개인의 고민으로 옮겨가고 있다. 예를 들면 '직장 상사에게 잘 보일 수 있는 패션''지적이고 스마트해 보일 수 있는 패션''5초 만에 호감을 얻을 수 있는 영업직 패션' 등 꽤 구체적이고 다양하다. 패션에 신경 쓰지 않고는 성공적인 직장 생활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는 얘기다.
◆직장인 패셔니스타 3인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패션 철학을 추구하는 직장인 패셔니스타 3명을 만났다. 이들의 공통점은 조직이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하면서도 자기 개성을 마음껏 표출할 줄 아는 패션 노하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주인공은 대구지방법원에서 만난 김윤희(32'여) 판사. 법원은 비교적 복장 규정이 엄격한 편이다. 다른 공공기관에서는 단정함을 잃지 않는 선에서 허용된 청바지 착용이 아직도 금지된 곳이다. 2009년에 임관한 4년차 신세대 판사인 김 판사는 그러한 틀 안에서 자기 색깔을 낼 줄 안다. 노하우는 상, 하의 둘 중 하나는 튀는 패션 아이템을 착용하지만 나머지 패션 아이템들로 단정함을 보완하는 것. 실제로 이날 김 판사는 독특한 프린트와 디자인의 스커트를 입었지만 기본 디자인의 흰색 블라우스, 심플한 귀걸이, 깔끔하게 묶은 머리 덕분에 오히려 진중하면서도 감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김 판사는 "선배들로부터 예쁘장하기만 한 판사는 필요 없다고 들었다. 재판 당사자들과 따스한 소통을 할 줄 알면서도, 엄준한 법 집행을 할 줄 아는 냉철함을 가진 판사가 돼야 한다고 들었다"며 "이 역시 외모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다. 밝지만 가볍지 않고, 진중하지만 어렵지 않은 판사 패션을 계속 추구하겠다"고 말했다.
두 번째 주인공은 대구 남구청 비서실에 근무하고 있는 임효신(31'여) 씨. 그는 10여 년 경력의 베테랑 비서다. 처음에는 몸에 딱 맞는 정장을 입고,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일했단다. 의전을 주로 담당하는 비서라면 그 누구보다 격식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구청 비서실은 여느 비서실과 달라요. 주민들이 많이 찾습니다. 딱딱한 복장으로 까다롭게 응대하기보다는 밝은 캐주얼 차림으로 편안하게 응대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비서실 문을 두드리던 주민들이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구청을 찾고 있습니다."
임 씨의 패션에서 남구청만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운동화다. 임병헌 구청장은 의전을 꼭 갖춰야 하는 행사 외에는 늘 운동화를 신고 현장을 누빈다. 남구청 직원들도 운동화를 따라 신게 됐다. 임 씨도 마찬가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비서실을 찾을 경우 계단을 오르내리며 부축을 하기도 해요." 굽이 높은 구두보다 낮은 운동화가 꼭 필요한 이유다. 운동화는 밝은 캐주얼 복장과 패셔너블하게 어울린다. 게다가 발 건강도 챙길 수 있다. 여기에 업무에 주는 플러스 효과까지 더하니 임 씨에게 운동화는 일석삼조의 업무용 아이템인 셈이다.
세 번째 주인공은 NH농협생명 소속 보험설계사 김순영(39'여) 씨.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둔 아줌마다. 하지만 남들처럼 마냥 아줌마 패션을 추구할 수는 없다. 8년간 보험설계사로 일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매일 아침 신중하게 그날 입을 옷을 고른다.
보험설계사들의 기본 패션은 정장이다. 고객을 만났을 때 단정한 차림새로 호감 가는 첫인상 만들기에 승부수를 던져야 하기 때문. 그러면서 다양한 디자인의 셔츠 선택으로 멋을 낸다. 이 역시 스스로 만족하기 위한 멋이 아닌 고객의 호감을 이끌어내는 멋이다.
여름철에는 건강도 신경 써야 한다. "하루 종일 정장을 입고 다니는데 조금만 움직여도 지치는 것이 여름 날씨죠. 그래서 신축성이 좋아 몸이 편안한 스판 소재의 정장을 챙겨 입습니다. 그만큼 업무 효율이 오르죠."
김 씨에게 패션은 고객에게 말을 거는 또 다른 도구다. 김 씨는 "패션에 신경 쓴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관리를 성실하게 한다는 것이고, 고객도 알아준다"며 "패션에 자신감을 가지면, 그 자신감 역시 그대로 고객에게 전달돼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사진 = 정운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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