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방송인, 교수, 해설위원, 체육단체 사무국장, 공기업 직원' VS '사업 실패(신용불량자), 야채장수, 유흥업소 책임자 및 종업원, 범죄자'.
대한민국에서 운동을 했던 각 종목별 간판급 선수들의 은퇴 후 삶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다른 직종보다 양극화가 더 심한 편으로 알려져 있다. 현역시절 화려했던 '스펙'을 바탕으로 사회에서 자신의 길을 잘 개척하고 있는 이들이 있는 반면 사회 적응에 실패한 사람들도 있다.
스포츠 스타를 꿈꾸며 운동에 뛰어든 수많은 도전자 중에 부와 명예(인기)를 함께 누리는 스타가 되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진주를 찾는 것만큼 힘들다. 축구선수가 국가대표로 뽑히는 것은 확률적으로 사법시험 합격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있다. 이런 탓에 운동선수들이 은퇴 후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사례들이 많다. 계명대 체육학과 김기진 교수는 "저 역시 운동을 했기 때문에 그 생리를 잘 안다"며 "운동 선수들이 사회생활에서도 스포츠맨답게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열심히 노력하지만 사회는 그렇지 않고 오히려 그런 순진한 운동선수들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충격' 사건 2건
최근 운동선수 출신들이 개입된 사건 2건이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사업을 하다 망해서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승부조작에 말려들어 불명예 은퇴를 당한 일에 이어 형사사건에까지 이름이 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부녀자 납치는 충격 그 자체였다. 지난해 5월 프로축구 승부조작 파문의 핵심 인물로 축구계에서 영구 제명된 김동현 전 국가대표 선수와 윤찬수 전 프로야구 선수가 심야에 귀가하는 부녀자를 납치해 달아난 혐의로 구속됐다. 두 사람은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발렛파킹으로 시동을 켜 놓은 차를 훔친 뒤 한 부녀자를 뒤따라가 지하 주차장에서 납치한 혐의다.
경찰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군대 선'후임병 사이로 불명예 현역 은퇴 후 사업 실패 등으로 은행 이자를 갚으려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모래판의 신사'로 잘 알려진 전 씨름 천하장사 이준희 씨 역시 농촌 노인들을 상대로 한 건강식품 판매 사기에 연관돼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이 씨가 포함된 사기단은 노인 5천여 명을 대상으로 건강식품을 10배 가까이 비싸게 속여 팔고 20여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씨는 사기단에서 속칭 '바지 사장' 겸 '강사'를 맡아 약품의 효능을 과대선전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퇴 후 뭐하나? 왜 이럴까?
한국조폐공사 소속으로 역도 국가대표를 지낸 김영태 씨는 은퇴 후 공사에서 선수가 아닌 '기술인'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전문기술직 전환을 이뤄 회사 생활에도 잘 적응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국체전 4연패에 빛나는 전 복싱 국가대표 류지윤 씨 역시 은퇴 후 대구체고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 현재는 체육관(굿복싱다이어트)을 열어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전 축구 국가대표 김현수 씨 역시 현재 대구FC 유소년팀과 현풍고 감독을 맡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잘 풀린 사례들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운동선수들은 은퇴 후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많다. 프로야구 선수 B씨는 가족 명의로 지역에서 작은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 선수도 서울 뚝섬에 300억원대의 건물을 매입해 임대사업을 하고 있다. 양준혁 SBS 해설위원도 다음 달 요식업 프랜차이즈를 출시할 예정이다.
전 씨름 천하장사 김정필 씨는 "현역시절 7, 8년 동안 연봉'상금 등을 합하면 많은 돈을 벌었다"며 "하지만 은퇴 후 품위를 유지하면서 뭔가 생산적인 일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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