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칸막이

그가 어머니와 같이 외래에 왔다. 결혼하기 전에 MRI를 촬영해 종양의 재발이 없는지 확인하고 싶어서다. 전산에서 옛날 기록들을 이리저리 찾고 있으니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교수님, 기억 못 하세요? 이 애를 수술하고 들어낸 종양 덩어리가 없어졌다고 전공의들에게 고함치면서 병실 바닥은 물론 쓰레기통까지 샅샅이 뒤지던 일을요?" 아! 기억난다. 평생에 한 번 겪었던 그 일이.

그가 6살이던 때 머리가 아프고 토한다면서 어머니와 같이 병원에 왔었다. CT를 찍어보니 어른 엄지손가락 크기만 한 종양이 소뇌에 있었다. 악성 종양으로 생각되었지만 악성도가 낮은 성상세포종일 가능성도 있었다.

종양제거 수술은 별 문제없이 끝났다. 환자를 회복실로 보내고 들어낸 종양 덩어리를 병리과로 보내기 위하여 찾으니 없었다. 몇 시간에 걸쳐 수술실 곳곳을 샅샅이 찾고 중환자실에 올라와 그를 옮겼던 이동 침대와 쓰레기통을 또 뒤졌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그 사실을 환자 어머니께 말씀드렸었고 엄마는 그 사실을 지금까지 기억해서 나에게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MRI 촬영을 시행하니 종양의 재발은 없었다. 그 사실을 알려 드리고 결혼 후 잘 살라고 말하자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면서 이야기를 한다.

"수술받은 이 애를 키우면서 좋은 일 하면 애가 괜찮아질 것이라고 믿으며 하루도 빠짐없이 봉사를 다니고 아들을 위해 기도했어요. 그래서인지 애는 정말로 성장하면서 엄마 속을 하나도 썩이지 않았어요. 지금은 취직해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눈물방울이 책상 위로 떨어진다. 어머니가 울자 그의 표정이 울 듯한 표정으로 변하더니 갑자기 묻는다. 그가 수술받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을 때 그곳에서 근무하던 수간호사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만날 수 없느냐고.

"옆의 환자가 갑자기 죽었어요. 무서워 돌아누우니 그쪽에서는 정신없는 환자가 고함치며 설쳤어요. 너무나 무서워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 수간호사 누나가 칸막이를 쳐 주셨어요. 이쪽도 저쪽도 무서운 광경 보지 말라고요. 그 누나가 지금 무척 보고 싶습니다."

그때쯤의 중환자실 수간호사를 떠올리니 모두 직장을 떠나신 분들이다. "그래, 가만히 생각해보니 생각나는 분이 두 분 정도 있는데 모두 퇴직한 상태네. 나중에 그분들을 만나면 자네 이야기를 꼭 전해 주겠네. 미안하네. 그리고 결혼하면 잘 살게."

그와 어머니는 무척 섭섭해하면서 외래 진료실을 나간다. '무심하게 해준 조그만 배려가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 잊지 못하는 은혜가 된다'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 주면서.

임만빈(계명대 동산의료원 신경외과 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