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with 라이온즈 열정의 30년] ML 선진야구 전수한 '최고의 전도사'

(37) 외국인 선수 (하) 자기관리와 프로정신 심어준 프랑코

방망이를 앞으로 곧추세우는 특이한 타격자세가 인상적이었던 훌리오 프랑코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투철한 프로정신으로 삼성의 역대 최고 외국인 선수로 꼽히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방망이를 앞으로 곧추세우는 특이한 타격자세가 인상적이었던 훌리오 프랑코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투철한 프로정신으로 삼성의 역대 최고 외국인 선수로 꼽히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훌리오 프랑코(2000년'도미니카)는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은 외국인 선수 중 역대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한 시즌밖에 뛰지 않았지만, 그가 삼성에 미친 영향은 무척이나 컸기 때문이다.

16년간 메이저리그(ML)서 뛰는 동안 통산 타율 0.301, 141개의 홈런, 981타점을 기록한 프랑코는 1998년 외국인 선수제도가 도입된 이래 한국 무대를 밟은 외국인 선수 중 프로필 면에서 최고였다. 지금까지도 프랑코를 능가하는 이력서를 가지고 국내 무대를 밟은 외국인 선수는 없다.

2000년 시즌 후 한국을 떠났던 프랑코. 12년이 지났지만 그가 삼성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꼽히는 건 비단 화려했던 전력과 국내무대서 보여줬던 기록(타율 0.327'6위. 22홈런, 110타점'3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삼성 최무영 편성팀장은 "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거쳐 갔지만, 프랑코만큼 프로정신이 강한 선수는 없었다. ML식 자기관리를 국내 선수들에게 보여줬고, 경험에서 우러난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기에 바쁜 선수였다"고 말했다.

1982년 필라델피아 입단 후 14년을 100경기 이상 소화했고, 1990년에는 텍사스 소속으로 아메리칸리그 타격왕에까지 올랐던 프랑코는 ML에 비하면 한없이 한참 모자란 한국무대에서 절대 우쭐대지 않았다. 그는 마치 선진야구를 전수하러 온 전도사 같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우승으로 한국야구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야구는 세계야구계의 변방에 불과했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외국인 선수 역시 ML 진출에 실패하거나 나이가 들어 더는 활용가치가 떨어진 선수가 대부분이었다.

프랑코도 후자로 여겨졌다. 입단 당시 1961년생(40세)이라 밝힌 나이는 ML사무국에 의해 1958년생이라는 게 드러났고, 그나마도 정확하지 않았으니 프랑코는 한물간 '퇴물'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프랑코는 "한'미'일 프로야구를 경험하고 싶어서 왔다"(프랑코는 일본에서 2시즌을 보냈다)며 나이 때문에 갖는 선입견에 항변했다.

이 할아버지 선수는 비록 발이 느리고 수비가 약했지만 시즌이 시작되자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도루를 뺀 타격 여러 부문서 고르게 상위에 랭크되더니 5월 17일 대구 두산전에서는 3개의 홈런을 몰아치는 괴력을 발휘했다. 그사이 삼성은 여름이 되면 체력이 떨어질 것을 우려, 10승을 올릴 수 있는 투수 자원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시즌을 시켰고, 한 경기를 뺀 132경기에 출전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그리고 함께한 선수들에게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값진 교훈을 보너스로 남겼다.

그것은 철저한 몸 관리와 프로정신이었다.

프랑코는 경기가 끝난 뒤 쏜살같이 사라지는 법이 없었다. 한 시간 정도는 경기장에 남아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철저한 생활양식, 충분한 휴식과 영양섭취에 무척이나 신경 썼다. 흡연은 절대불가, 술은 식사 때 간단히 마시는 와인이 전부였다.

한국문화에도 상당히 심취하면서 김치와 삼계탕을 즐겼다. TV를 보는 대신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 엄격한 자기관리와 철저한 생활태도는 종교 이상의 의미를 지는 듯 보였다.

아침에 일어나 달걀흰자를 첫 끼니로 해가 질 때까지 5, 6끼 식사를 했지만 패스트푸드, 탄산음료는 사양했다. 브로콜리, 양파, 사과 등 여러 가지 과일과 채소를 혼합해 만든 음료를 마셨는데, 그걸 맛본 선수들은 맛이 고약해 입을 헹궈내야 했다.

프랑코는 당시만 해도 웨이트트레이닝은 몸의 유연성을 망친다는 이유로 등한시하던 국내선수에게 끊임없이 웨이트트레이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때로는 코치를 대신해 선수들에게 타격 노하우를 전수했고, 경기에서 패한 뒤 벌어진 기합성 훈련에도 묵묵히 임했다.

"내가 컨디션이 좋을 때는 어떤 투수의 공도 쳐 낼 수 있고, 타격감이 나쁠 때는 그저 그런 투수의 공이라도 못 치게 된다. 투수의 공이 손에서 떠나는 순간부터는 나와 볼과의 싸움이다. 그 공을 쳐 내고자 노력할 뿐이다."

삼성 선수들은 조금씩 ML 대선수의 야구철학에 물들어갔지만, 프랑코는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했다. 삼성은 김용희 감독을 물리치고 우승청부사 김응용 감독을 영입하는 격변기를 맞았고, 김응용 감독은 수비포지션(1루)이 겹치고 장타력 부족과 허술한 수비를 이유로 들어 그에게 결별통보를 했다.

그는 2001년부터 다시 ML에 복귀했고,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애틀랜타서 100경기 이상을 소화했다. 그리고 뉴욕 메츠 소속으로 만 47세 240일째 되던 2006년 4월 21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8회 투런 아치를 쏘아 올려 잭 퀸(1930년, 46세 357일)이 갖고 있던 역대 최고령 홈런 기록을 76년 만에 갈아치웠다. 2007년 메츠, 애틀랜타를 마지막으로 빅리그를 떠난 프랑코는 48세254일째 되던 2007년 5월 5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왼손 투수 랜디 존슨을 제물로 생애 마지막 홈런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2008년 은퇴했다. 만 50세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때였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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