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색깔론'보다 '色盲'(색맹)이 더 문제다

초여름 산과 들이 초록 빛깔로 푸르다.

간혹 뿌려주는 낮 소나기와 함께 지친 마음을 식혀주는 신록의 빛깔도 사람 따라, 마음 따라 느낌이 달라질 수 있나 보다.

시인 이상(李箱)은 초록 숲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움 대신 '지겨움'을 읊어냈다. '나는 처음 이곳에 와서 신선한 초록빛에 놀랐다. 사랑하였다. 그러나 닷새가 못 돼서 무제한의 초록색은 조물주의 몰취미와 무신경에 의한 무미건조한 것임을 발견하고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쩔 작정으로 저렇게 퍼러나. 하루 종일 저 푸른빛은 아무 짓도 않는다. 오직 그 푸른 것에 백치처럼 만족하며 푸른 채로 있다.'

반대로 어느 문인은 초록색을 이렇게 예찬한다. '연한 초록에서 짙은 초록까지 나는 모든 초록을 사랑한다. 신록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참으로 비할 데가 없고 어떤 색채에도 뒤떨어지지 아니한다.'

예술인들의 눈에 비친 색깔은 있는 그대로 느끼고, 분방하게 표현되고, 그리고 그것으로 그만인 모양이다. 그런데 그 색깔이란 게 정치판으로 들어가면 왜 시빗거리가 되는 것일까. 모든 정치에는 항상 색깔이 싸움거리가 돼 왔었던가? 아니면 유별스레 우리네 정치판만 색깔을 놓고 물고 뜯는 것일까.

먼 역사를 거슬러 보자. 하(夏)나라는 검은색을 숭상하여 국가의 큰일을 치를 때는 어두운 저녁 무렵에 치르고 군사들은 검은 말을 타며 제사에는 검은 소를 썼다. 그다음 은(殷)나라 때는 흰색을 택해 군사들은 흰 말을 타고 종묘 제사에는 흰 소를 썼다. 또 그다음 대(代)인 주(周)나라는 붉은색을 숭상하여 큰일은 붉은 해가 뜨는 새벽에 치르고 군사는 붉은 말을 타고 제사에는 붉은 소를 썼다. 무념무색(無念無色)의 경지다.

3천여 년이 지난 21세기에 우리나라 정치판은 낡은 색깔론으로 시끄럽다. 민생은 팽개친 채 금쪽같은 날을 허송하며 다투는 색깔론은 에둘러댈 것 없이 한마디로 '빨갱이론'이다. 북한 체제에 빨간색 이미지가 붙여진 것이 공산당 기(旗)가 빨간색이어서였는지 명확한 근원은 알 수 없다. 6'25전쟁을 겪으며 남한 청소년들은 자연스레 '빨갱이'란 언어를 학습받았고 북한=빨간색이란 등식이 반공 의식 내지 안보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공산당(빨갱이)이 싫어요'라는 말 한마디에 입이 찢겨 살해된 어린 이승복 군의 절규도 그런 맥락에서 빚어진 비극이다.

따라서 색깔론은 가시적 형체가 아닌 이념 세력 간 갈라치기의 상징적 언어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양쪽 다 집착하거나 기대 볼 만한 상생의 언어는 아니란 뜻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북한 체제의 인권 문제나 대남 군사력 위협 같은 비민주적인 적대적 종북 행태를 비판하고 견제하자는 것을 색깔론이란 말꼬투리로 덮어버리려는 태도다. 공공연히 종북 노선을 따라가면서 궁지에 몰린다 싶으면 오히려 이쪽은 잊고 있었던 색깔론을 꺼내 드는 수법, 그리고 종북 이념 확산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나쁜 인간들인 양 역공하는 정략이야말로 역매카시즘이다.

색깔론이란 방패는 그들 종북 세력이 불리할 때마다 꺼내 드는 그들만의 무기였다. 건전한 다수 보수들은 하'은'주 사람들이 검은 군대와 흰 말과 붉은 소를 무심하게 썼듯이 굳이 특정 색깔에 옭매여 시비하지 않았다. 단지 종북 세력의 확산이 가져올 나라의 안위를 미리 경계해 왔을 뿐이다. 제 발 저린 도둑처럼 빨갱이란 색깔론을 꺼낸 건 이번에도 그들이었다. 빨간색과 초록색을 구별하지 못하는 '홍록색맹'으로 말한다면 지금 색깔론을 떠드는 정치 세력은 정치적 색맹들이다. 그들은 '××' 폭언과 북한 인권 외면, 거짓 선동, 부정을 색깔론이란 방패로 감추며 저항하고 있는 종북 세력의 언동을 뻔히 보면서도 계속 '초록색이야'라고 우기고 감싼다.

가면을 썼거나 색맹이 아니고선 그럴 수 없다. 결국 색깔론의 본질은 색깔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눈에는 뻔히 보이는 색깔을 다른 색깔이라 우기고, 궁지에 몰리면 눈 고칠 생각은 않고 색깔론부터 꺼내 드는 색맹 체질이다. 미친 자는 자신이 안 미쳤다고 하는 법이고 술 취한 자는 자신은 안 취했다고 한다. '나는 빨간색이 아니오'라고 제 입으로 자꾸 떠드는 사람들, 누가 초록이라 믿어 줄 것인가.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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