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인정(人情)은 어디에

인정(人情)과 인심(人心)은 거의 유사한 단어다. 세상 사람의 마음으로 해석한다면 같은 뜻이다. 그러나 인정은 남을 동정하고 이해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인심은 남의 처지를 헤아려 주고 도와주는 마음으로 본다면 남을 이해하는 마음과 도와주는 마음에서 풍기는 미묘한 차이가 두 단어의 차이랄 수 있다.

1960년대, 대구시 남산동 남문시장 공터에 곡마단이 곧잘 찾아왔다. 공연 며칠 전부터 풍물재비가 마을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북과 장구, 꽹과리와 징을 울리며 흥을 돋웠다. 앞장 선 어릿광대 난쟁이의 얄궂은 분장이 재미있어 마을 아이들이 졸졸 뒤를 따랐다.

"다치마 우얄라꼬? 고마 타지마라!"그네의 밑싣개 반동을 이용한 탄력으로 공중회전 한 어린 무희가 아슬아슬하게 곡예사의 손을 잡아 추락을 면하는 장면을 본 관객들의 탄성은 동일했다. 다수의 관객들이 혹시 실수하여 떨어지는 광경을 보지 않기 위해서 눈을 감고 지른 함성이었다. "돈 내돌라꼬 안 할 테니 그만하고 내려온나. 무서버서 못 보겠데이~."어린 곡예사의 안전을 걱정한 관객들이 급기야는 난이도가 한층 높은 공중곡예를 못하도록 만류했다.

가설무대에서 펼쳐진 연극에서 여자주인공이 바다 풍경이 그려진 벽 앞에 서서 투신하는 장면이 전개되고 있었다."할부지, 사람들이 왜 웁니꺼?" 관객 모두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슬퍼서 우는 것이란다.""실제 바다도 아닌데, 저 게 뭐가 슬프지요?"어린 손자의 물음에 할아버지는 말없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경북 군위군 소보면의 전형적인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면소재지를 지나 어느 정도 달렸을 무렵, 길을 가던 노파가 손을 들었다."어디까지 가시는데요?" "양어장 옆 다리까지 가요.""길을 잘 모르기 때문에 차가 도착하면 얘기하세요."

노파는 품앗이꾼의 간식을 사서 돌아가는 참이었다."품삯이 비싸지요?""비싸도 사람이 없어요. 노인들만 사는 곳이라서…." 제법 먼 길이었다. 얼마 후 노파가 가리킨 다리가 보였다."저 다리가 맞죠?" "맞습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별 말씀을…. 그럼 잘 가세요.""참, 그라고, 선생님, 이것을 자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한 개만 드시이소."노파가 봉지에서 빵을 꺼내 내밀었다.

"일꾼들에게 주세요." 거절했으나 노파가 막무가내 빵을 차에다 두고 내렸다. 시골 구멍가게에서 파는 비닐봉지로 감싼 빵이었다. 문득 50여 년 전, 남문시장에서 본 곡마단 생각이 났다. 가냘픈 곡예사의 안위를 걱정하고 그림 속의 바다일망정 빠져죽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는 인정(人情)이 생각난 것이다.

정재용/소설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