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엄마의 고질병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이 뭐예요?" 아내가 물었다. "글쎄, 엄마가 뭘 좋아하지?" 나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아니, 수십 년을 봐온 아들이 어떻게 자기 어머니가 뭘 좋아하시는지도 몰라?" 아내는 기가 찬 듯 다시 물었지만 오히려 당황스러운 것은 나였다. 갑작스러운 자각이었다. 자식이 어떻게 엄마(나는 여전히 이 호칭을 고집한다)가 좋아하는 음식도 모르고 살아왔단 말인가? 엄마는 아직도 내가 고향에 갈 때마다 아들이 좋아하는 우엉잎을 꼭 쪄내 오신다. 그런데 나는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니. 자괴감이 얼굴을 화끈거리게 했다. 그래서 마음먹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매운 것을 좀 꺼려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거나 다 잘 드셨던 것 같기도 하다.

결국 내가 도출한 결론은 엄마는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엄마의 좋아하는 음식도 모르고 있었던 형편없는 자식을 변명하기 위한 결론이 아니었다.

우리 엄마는 열여덟에 시집을 와서 시조부모와 시부모를 모시고 어린 시누이들에 오남매의 자식들까지 보살펴야 했다. 그리고 몸이 불편해 노동력이 없던 남편 대신 적지 않은 농사일도 감당해야 했다. 사시사철 장날마다 농사지은 채소를 장에다 내다 팔았다. 그야말로 숨 돌릴 틈 없이 버거운 삶이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밥은 식사나 음식의 의미는 미미했다. 노동을 지속하기 위한 연료 같은 기계적 의미였는지도 모른다. 먹을 것이 그렇게 풍족한 시절도 아니었다. 맛을 따지고 좋아하며 싫어하는 것을 가려 특정한 나만의 음식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사치였던 것이다.

시조부모와 시부모가 돌아가시고 시누이들이 다 시집을 간 후에도 엄마의 처지는 나아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우리 오남매에 대한 모든 부양의 책임을 엄마에게 떠넘긴 채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엄마는 평생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 기회나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몇 년 전 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엄마는 그 여유로워야 할 여행 중에도 늘 급했다. 화장실은 바지를 내리며 들어갔다가 바지를 올리며 나오셨다. 식사도 마치 부담스런 숙제를 해치우는 것처럼 쫓기듯 급하게 하셨다. 그 버릇이 어딜 가겠는가?

오늘도 우리는 엄마들에게 묻는다. "엄마 뭐 드시고 싶으세요?" 엄마들은 여전히 "개안타, 개안타"를 연발하시고 "아무끼나"라는 정해진 대답만 되풀이한다. 이제는 인이 박혀 고칠 수도 없는 엄마들의 고질병이다. 그냥 알아서 해 드리는 수밖에 없다.

이병동<CF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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