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근육 마비' 유전질환 앓는 김종훈 씨

세상에 배신 당하고 빈털털이 신세에 몸마져 망가져가니…

김중춘 씨는 근육병 환자다. 근육이 서서히 굳어지면서 걸음을 걷고,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는 일상 생활을 남에게 의존해야 한다. 김 씨는 조금씩 굳어가는 근육처럼 자신의 삶도 굳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김중춘 씨는 근육병 환자다. 근육이 서서히 굳어지면서 걸음을 걷고,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는 일상 생활을 남에게 의존해야 한다. 김 씨는 조금씩 굳어가는 근육처럼 자신의 삶도 굳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11일 오후 대구의 한 대학병원. 팔다리가 앙상한 김중춘(42) 씨가 세숫대야에 침을 뱉어내고 있었다. '근긴장성 이영양증' 환자인 그는 혼자 걸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어 24시간 간병인에게 의존하고 있다. 최근에는 호흡 곤란 증세 때문에 목에 구멍을 뚫어 호흡기를 삽입했다.

이 병은 근육이 경직되면서 점점 약해지는 난치성 유전질환이다.

◆"세상을 믿었는데…"

이날 만난 김 씨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간병인의 부축을 받아 침대에 앉은 그는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날 인터뷰는 김 씨가 목에 박힌 호흡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없어 어머니 변분자(66) 씨와 누나 김진옥(45) 씨가 그의 삶을 대신 전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40년 넘게 살아온 그의 인생에는 좀체 웃을 일이 없었다. 세상과 사람을 믿으며 살아왔지만 사람들은 번번이 그의 믿음을 배신했다.

상고를 졸업한 김 씨는 대구 성서공단에 있는 자동차부품공장에 취업했다. 26세가 됐을 때는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던 부인을 만나 가정도 꾸렸다. 100만원 남짓한 월급으로 생계를 꾸리는 일이 빠듯했지만 그에겐 '견딜만한 가난'이었다. 나이 서른을 갓 넘겼을 때 회사 상사가 그에게 어려운 부탁을 했다. "대출을 받는데 김 씨 명의를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매일 얼굴을 보고 지내는 직장 동료가 사기를 치겠냐는 생각으로 명의를 빌려준 것이 화근이었다. 회사 상사는 김 씨 명의로 캐피탈사에서 차량 대출을 받아 차 3대를 구입했고 차를 팔아 현금으로 바꾼 뒤 잠적했다. 매달 청구되는 대출금은 고스란히 김 씨 몫이 됐다.

"상황이 이런데도 중춘이는 가족들한테 입을 열지 않았어요. 식구들이 걱정할까봐 혼자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도 주변에 털어놓지 않았어요." 누나인 진옥 씨가 말했다.

◆남은 것 없는 인생

대출금이 연체되고 채권 추심업자들이 김 씨 직장과 집으로 찾아오면서 식구들도 이 사실을 알게 됐다. 누나 진옥 씨는 "지난 10년은 끔찍한 악몽이었다"고 털어놨다.

채권 추심업자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집으로 전화를 걸어 "돈을 갚으라"라고 독촉했으며, 김 씨 회사에 찾아가 행패를 부려 회사까지 관둬야 했다.

김 씨를 폭행하는 것은 물론 그를 납치해 먼 곳에 끌고 가기도 했다. 어머니 변 씨는 "그 때는 경찰에 신고해야겠다는 생각도 못했고 어서 빨리 돈을 갚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아들이 '나 죽으면 안 되겠냐'고 물어봤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가슴을 쳤다.

채권 추심업자들의 가혹한 행동 때문에 결국 가정의 평화가 깨졌다.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독촉 전화 탓에 온 식구들은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런 삶이 길어지자 부인은 김 씨에게 이혼을 요구했고 2005년 합의 이혼했다. 올해 16세, 17세가 된 남매는 부인이 혼자서 키우고 있다. 아들의 가정이 해체되자 어머니 변 씨는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빚을 갚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전세금 2천만원과 각종 보험을 해약해 3천만원 가까운 돈을 마련했고 10년 만에 빚을 갚았다. 빚을 갚고 나니 추심업자들은 더이상 찾아오지 않았지만 이들 가족은 빈털터리가 됐다. "사람을 믿은 게 죄지, 중춘이가 세상이 얼마나 혹독한지 모르고 당한거죠."

◆이제는 몸이 배신해

김 씨가 이제 다시 시작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을 때 몸이 그를 배신했다. 20년 전부터 당뇨를 앓아왔던 그의 몸이 40대가 되면서 겉으로 문제가 드러났다. 2010년 봄, 금속회사에 생산직으로 취업해 일하고 있을 무렵 뇌경색으로 쓰러졌고 몸 왼쪽이 완전히 마비됐다. 이제 자식된 도리를 해야 할 나이인데 김 씨는 또다시 어머니에게 신세를 져야 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올해 3월 갑자기 숨이 막혀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고 폐 안에 염증이 찬 '폐농양'과 '폐렴', 근육이 경직되는 '근긴장성 이영양증' 진단까지 추가로 받았다.

김 씨는 폐 수술을 한 뒤 중환자실에서 한 달 넘게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지금 그를 진짜 힘들게 하는 것은 근육병이다. 두 발로 걸음을 걷고,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도 벅찬데 요즘에는 혼자서 숟가락을 들 수도 없을 만큼 근육이 굳어가고 있다. 근육이 계속해서 뻣뻣해진다면 평생 누워서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 딱딱한 음식을 먹어본 지도 오래다. 목 안 근육이 굳자 목에 구멍을 뚫어 호흡기를 단 김 씨는 코에 연결된 줄로 하루 세 끼 죽을 먹고 있다.

어머니 변 씨는 "요새처럼 먹을 것이 많은 세상에 평생 죽만 먹고 살아야 하는 아들을 생각하니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병원비도 문제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20만원 남짓한 생계 급여를 정부에서 받고 있으나 이 돈으로 700만원 넘게 나온 병원비를 내기란 역부족이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누나 진옥 씨도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동생을 도울 수 없는 처지다. 김 씨는 굳어가는 근육처럼 자신의 삶도 여기서 멈춰설까봐 두렵기만 하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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