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생각하지 않는 죄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부인 이순자 여사, 손녀 등과 함께 육사 생도들을 사열하면서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이 지난 9일 SNS 트위터를 통해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지난 6월 8일 육군사관학교 발전기금 200억 원을 달성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에서 전 전 대통령은 생도들이 열병 도중 '우로 봐!'라는 구호에 맞춰 경례할 때 거수경례로 답했다. 육사의 설명에 의하면 전 전 대통령은 1천만 원~5천만 원 출연자 자격으로 이 자리에 초청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누군가? 쿠데타와 5'18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한 책임을 물어 '내란 수괴죄', '내란목적 살인죄' 등으로 대법원에서 사형을 확정받았던 사람이다. 대한민국 육군의 미래를 이끌어갈 장교를 교육시키는 육군사관학교에서 젊은 생도들이 충성을 외치며 바라본 사람이 바로 쿠데타와 민간인 학살의 주역이었다. 말이 되는가.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래 나도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저 자리에 서서 후배들의 자랑스러운 선배가 되자. 쿠데타면 어떤가. 일단 성공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지 않는가.

검찰은 지난 10일 이명박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로 사용될 서울 서초구 내곡동 터 불법 매입 의혹과 관련해 지난해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고발한 이 대통령 등 피고발인 7명을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아무런 혐의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한 시사주간지의 폭로로 촉발된 이명박 대통령 사저 부지 매입 의혹이 이 대통령의 사과를 포함 240여 일간의 숱한 논란만을 남긴 채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마무리됐다. 검찰은 다만 청와대가 땅을 구입한 뒤 부담금을 나누는 과정에서 일부 잘못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법적으로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니며 대통령 장남인 이시형 씨가 이득을 보도록 행정을 처리한 청와대 직원에게 잘못을 묻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검찰은 이 씨와 대통령실의 지분 비율과 매매대금 간 불균형에 대한 내용을 감사원에 통보해 관련 공무원들의 과실이나 비위행위에 대한 감사에 참고토록 조치했다.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서일필(鼠一匹)이라더니.

2012년 6월 대한민국 육군의 정신을 대표하는 육군사관학교는 쿠데타의 주역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전 전 대통령에게 최대한 예의를 표했으며, "성공한 쿠데타를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관련자들을 불기소 처분했었던 대한민국의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인 이명박 대통령의 심기를 조금도 거스르지 않는 충견이 됐다. 권력에 대한 맹목적 충성 경쟁이 가관이다.

유대인 학살의 책임을 묻는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예루살렘 재판 과정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악마가 아니라 지극히 온순하고 가정적인 사람이라는 데 놀랐다. "그는 사악하지도 않았고, 유대인을 증오하지도 않았다. 단지 히틀러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에서 관료적 의무를 기계적으로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었다."

아이히만은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 '반성적 사유의 결여' 때문에 '냉철한 톱니바퀴 기술자'가 되어 유대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학살했다는 것이었다. 예루살렘 법정의 검사는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행동하지도 않은 것이 아이히만의 죄"라며 그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2012년 6월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 수장인 국회의장에 강창희 의원이 선출될 것이다. 강 의원은 박근혜 전 위원장의 멘토단으로 알려진 '7인회' 멤버중 한 사람으로 하나회 출신이다. 5선 의원인 강창희 의장은 자신의 자전적 에세이 '열정의 시대'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정치생활의 멘토"라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이 살고 있는 서울 연희동에 사는 한 초등학생이 '29만 원 할아버지'라는 글을 썼다. "29만 원 할아버지! 얼른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비세요. 물론 그런다고 안타깝게 죽은 사람들이 되살아나지는 않아요…제 말이 틀렸나요? 대답해보세요! 29만 원 할아버지!"

송기도/전북대교수·전 콜롬비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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