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괴물'이 된 검찰, 개혁 늦출 수 없다

'에이리언'이나 '프레데터', 최근에 개봉한 '프로메테우스' 등 괴물이 등장하는 할리우드 영화에는 일정한 공식이 있다. 괴물의 힘은 모든 것을 쓸어버릴 정도로 무시무시하지만, 주인공은 죽이지 못한다. 결정적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상황에서 헛손질하거나 간발의 차로 놓쳐버리기 일쑤이다. 그 과정이 아슬아슬해 실감 나긴 하지만 다른 등장인물들이 힘없이 희생되는 것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주인공의 능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훨씬 강한 힘을 지닌 괴물이 주인공을 잡지 못하는 상황은 매우 교묘하게 그려진다. 관객들이 알아채기 어렵겠지만, 주인공 앞에서 괴물은 부실해지며 주인공을 봐주기조차 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가공할 괴물이 주인공을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

영화에서야 관객들이 괴물의 부실함을 눈치 채든 말든 주인공의 승리로 끝나는 결과에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현실에서는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괴물처럼 무소불위의 힘을 지닌 검찰이 내곡동 대통령 사저 매입 의혹과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에 대해 부실 수사로 '봐주기' 논란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사저 매입 의혹 사건은 사저 부지를 대통령 아들 이름으로 사들이면서 공시지가보다 적은 돈을 부담해 국가에 손해를 끼치고 부동산실명법 위반 소지가 있는데도 문제 삼지 않았다. 수사 과정도 주요 피고인들의 소환 조사에 늑장을 부리는가 하면 대통령 아들에게는 서면 조사로만 끝내는 등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도 마찬가지다.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관여했으며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증거인멸에 개입했다는 정도로 수사를 마무리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증거인멸 개입 의혹이나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입막음용으로 건네진 '관봉 5천만 원'의 출처 등 핵심 의혹은 규명하지 못했다. 민간인 불법 사찰은 최근 조계종 지도자나 이용훈 전 대법원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에 대해서도 이뤄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한다면 수사 결과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불법사찰이 자행될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권재진 법무부 장관은 검찰 수사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사퇴해야 하지만 수사팀에 관련 없다는 말만 하고 현직에 머물러 있다.

검찰을 '괴물'로 표현한 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검찰은 기소권과 수사권을 함께 갖고 있으며 기소편의주의에 따라 기소 여부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또 검찰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묻는 제도가 없어 통제도 받지 않는다. 이처럼 막강한 검찰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의 수사를 물타기하면서 '권력의 시녀' '정치 검찰'이라는 조롱을 받아왔다. 부패 문제도 발생해 '스폰서 검사' '벤츠 검사'가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수사의 칼날을 엄정하게 휘두른 검사들이 없지 않았으나 간혹 나타난 스타 검사의 성실함이 빛을 발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이 상황에서 해묵은 검찰 개혁 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검찰 개혁의 요체는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는 것으로 외국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은 수사는 모두 경찰이 하고 기소만 검찰이 한다. 미국에선 검사장급은 선거를 통해 뽑으며 독일은 검찰 내에 자체 수사 인력이 없고 범죄 사실이 확인되면 무조건 기소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그 답은 어느 정도 나와 있다. 민주통합당이 지난 3월 총선 공약으로 내놓은 검찰 개혁 방안이 그것으로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 독립적 수사기관인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신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검찰 개혁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으며 길이 제시돼 있는데도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것은 정부와 정치인들의 책임이다. 과거의 정부가 검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해 검찰을 괴물처럼 만들어 놓았으며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해 주면서 개혁을 시도한 정부도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정치인들이 검찰의 눈치를 보다가 개혁이 흐지부지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현 상황은 과거로 후퇴한 느낌이며 정치권의 의지에 달린 검찰 개혁을 더는 늦출 수 없다. 19대 국회는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 검찰 개혁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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