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가천 다랭이마을, 설흘산. 이 두 곳은 남해 남면(南面) 여행의 가치를 양분하고 있어 어느 것이 우선 순위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다도해 조망산행','한국의 마추픽추' 사이에서 쉽게 우열이 가려지지 않는다. 하긴 이 고민도 부질없는 일이다. 버스가 삼천포대교에 접어들자마자 일행은 답을 포기한 채 쪽빛으로 펼쳐진 남해에 시선을 빼앗겨 버렸기 때문이다. 애초에 자연에 등급이니 우열이니 하는 것은 없었다. 인간들의 기호(嗜好)나 호불호 같은 것들이 만들어낸 우문(愚問)일 뿐.
설흘산은 남해의 대표 산으로 이름을 얻었지만 실제 산행로는 서쪽 옆으로 능선을 잇댄 응봉산까지를 포함한다. 두 산은 남서쪽의 산줄기를 길게 가로지르고 있어 보통 이 등산로를 따라 종주산행이 이루어진다. 남해 끝단에 위치한 만큼 바다 조망이 일품이다. 일부 마니아들은 남해 산행의 으뜸으로 꼽히는 사량도 지리망산보다 이 '응봉'설흘 능선'을 선호하기도 한다.
◆첨봉-응봉-설흘-망산…환상의 암릉산행=응봉산 산행은 사촌마을에서 시작된다.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를 지나 오르막을 한 시간쯤 오르면 첨봉에 이른다. 먼저 발아래 어촌풍경이 시선을 끈다. 방풍림으로 심은 송림과 총천연색 슬레이트 지붕이 해무(海霧)에 비껴 묘한 배색을 이룬다. 마을과 마을을 따라 해안도로가 길게 이어졌고 그 선(線)을 따라 작은 차들이 작은 점선으로 움직인다.
평화로운 어촌의 정경을 뒤로 하며 응봉산으로 향한다. 아슬아슬한 바윗길을 따라 암릉이 펼쳐진다. 설악산 천화대처럼 웅장한 암군은 아니지만 다도해의 쪽빛 해수를 배경으로 펼쳐진 암릉은 나름의 위용을 갖췄다. 첨봉-응봉-설흘-망산은 나란히 연결돼 조망이 상쾌하다.
암릉을 따라 목책들이 잘 갖춰져 여성들도 쉽게 오를 수 있다. 이런 바위능선의 향연은 20여 분쯤 이어지고 응봉산을 지나면서 다시 육산(肉山)이 나타난다.
응봉산에서 설흘산 정상까지는 평범한 숲길이다. 능선을 오르내리다 숨이 차면 다도해에서 시선을 거둬 홍현리 쪽을 바라보는 것도 괜찮다. 산중턱까지 일궈놓은 논밭두렁들이 장관을 이룬다. 다랭이마을을 위한 예고편이라고 할까. 어쨌든 한 뙈기 땅을 개간하기 위해 애쓴 민초들의 노고가 묻어난다.
◆쪽빛바다 너머로 다도해 전경 한눈에=설흘산 정상은 응봉산과 불과 40여 분 거리. 급경사를 급히 오르는데 갑자기 사방이 펑 트이며 다도해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어느 새 설흘산 정상에 이른다. 해무 사이로 여수시, 향일암, 돌산도는 물론 멀리 한려수도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남해 섬 깊숙이 파고든 앵강만 너머 노도가 눈에 밟힐 듯 다가온다. 노도는 기사환국(己巳換局)때 정쟁에 밀려난 서포 김만중이 귀양을 왔던 곳. 이곳에서 서포는 풀뿌리로 연명하며 '사씨남정기', '구운몽'을 집필했다. 그는 55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물새들과 벗하고 고독과 싸우며 창작 열기를 불태웠다.
설흘산 정상엔 봉수대가 세워져 있다. 봉화는 국가변란이나 외침 때 불과 연기로 비상 교신을 하던 시설로 이곳 봉수대는 금산, 사천, 여수 등지와 연결된다.
다도해 풍경에 넋이 빠져 있다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오른쪽 산자락 사이로 다랭이 마을이 시야에 들어왔다. 쪽빛 바다를 향해 위태롭게 엉겨 붙어 있는 모습은 풍경이라기보다는 한 생명체로 다가온다. 거의 직벽인 능선 사이로 한 뼘, 반 뼘 밭뙈기들이 팔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진다.
하산 길에서도 다랭이마을은 계속 시선을 붙잡는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마을은 실경(實景)을 조금씩 드러내고, 높이가 낮아질수록 바다와 언덕의 각(角)이 바뀌며 마을의 풍경도 다양한 변화를 연출한다.
◆108층의 계단에 680여 개의 '논밭 퍼즐'=다랭이란 두렁으로 둘러쌓인 논배미가 길게 이어진 것을 나타내는 말로 '다랑이'의 방언이다. 45도 경사의 절벽 같은 땅에 층층으로 조성된 논 한 배미의 규모는 3~30평 남짓. 이 조각 땅들은 설흘산과 응봉산 7부 능선까지 108층의 계단을 이루고 있으며 모두 680여 개의 퍼즐을 형성하고 있다.
다랭이마을을 보면서 '백조의 호수'가 오버랩 되었다. 한가한 백조의 유영(遊泳)은 물밑 물갈퀴의 엄청난 노동의 결과라는…. 지금은 '그린 투어리즘'의 성공사례로 평가 받고 있지만 옛 민초(民草)들은 한 뼘 땅을 위해 절벽 같은 논둑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산비탈을 깎아 석축을 쌓고 고랑을 일궜다. 땅이 곧 생명이었던 시절이니 한 이랑 땅과 목숨을 바꾸는 '형평을 잃은 거래'도 이들은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접근이 쉽지 않은 탓에 당연히 트랙터는 쓸 엄두도 못 내고 소와 쟁기가 농가의 필수품이다. 밭을 갈던 소들도 한눈을 팔면 바다로 떨어진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마을 안쪽엔 남아선호 사상과 성기 숭배의 상징인 '암수바위'가 남아 있다. 높이 5.8m인 숫바위와 아기를 밴 여인의 형상인 높이 3.9m의 암바위가 나란히 서 있다. 이 바위는 마을의 수호신이면서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민초들의 염원이 밴 귀중한 문화자산이다.
최근 조성된 '지게길'은 트레커들 사이에서 남해의 명물로 급부상하고 있다. 지게길은 옛 마을의 주민들이 벼랑의 논밭을 경작하기 위해 닦아 놓았던 길이다. 논두렁, 밭두렁을 길게 이어 놓은 이 농로(農路)는 벼랑 끝 밭길부터 바닷가 논길까지 약 오리(五里)에 걸쳐 조성되어 있다.
마을 인구의 90% 이상이 조상 대대로 살아오는 토박이들이다. 네 집 내 집이 따로 없고 밥 때에 앉은 곳이 바로 끼니를 때우는 장소가 된다.
58가구 150여 명이 모여 사는 이 마을은 2002년 농촌진흥청으로부터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됐고 2005년엔 문화재청으로부터 '명승 15호'로도 선정됐다. 덕분에 매년 2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간다고 한다.
◆교통=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사천IC에서 내려 사천-창선 삼천포대교-지족리-앵강고개 19번 도로를 탄다. 앵강고개에서 1024번 지방도를 타고 월포 두곡해수욕장을 지나 석교마을 농로길을 지난 뒤 좌회전 한다. 청소년수련원을 지난 뒤 해안도로를 타고 잠시 진행하면 다랭이 마을에 도착한다.
◆숙소:깍꾸막=방1 5만원, 010-4941-6333. 세민민박=방1 4만원, 010-3120-8537. 파라다이스= 방1 4만원, 011-858-5344. 비파나무집=방1 5만원, 010-7120-3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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