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향기 전성시대] 팔공산 허브정원 명소

수십종 허브향 빠져드니 "어느새 심신이 말끔"

언뜻 스치는 여성에게서 살짝 풍기는 은은한 향은 기분을 좋게 한다. 골목길 카페에서 나는 고소한 원두커피 향은 나도 모르게 커피전문점으로 들어서게 하는 유혹이다. 사람도 은근한 향기가 있는 사람이 좋다. 팔공산 자락에 가면 심신이 맑아지는 허브향과 사람 향을 느낄 수 있는 명소가 있다.

◆향기 속에 사는 집

팔공산 파계사 가는 길 중간에 향기 충전소 '허브 위'가 있다. 그곳엔 언제나 향긋한 허브 향기가 넘친다. 입구에 '여긴 동(動)적이 아닌 정(靜)적인 공간입니다'라는 팻말이 서 있다. 나무계단을 살며시 밟고 들어가면 녹색의 허브 정원이 펼쳐진다. 마치 동화나라에 온 것처럼 아름답고 정겹다. 앙증맞은 허브들이 '나 좀 봐주세요' 하면서 저마다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 살짝 흔들어 주면 자신만의 향기로 대답한다. 모두 자기만의 독특한 향을 지니고 있어 한 포기도 모른 체할 수 없다.

허브 위의 아침은 일찍 시작된다. 일어나자마자 꽃 가족에게 물주는 일부터 시작한다. 이곳 신성화 대표는 "아침마다 꽃들에게 '사랑해'라고 말을 걸어줘야 좋아해요"라며 시원한 물줄기를 선물한다. 오전 11시면 입구에 살짝 걸어 둔 빗장을 열어 손님을 맞는다.

신성화'조원영 씨 부부가 이곳에 정착한 지 10년째다.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신 씨의 바람을 이룬 곳이다. 10여 년 전 이곳은 아무도 돌보지 않던 곳이었다. 비탈진 커브 길에다 조그마한 식당건물이 있었고 주변은 온통 쓰레기로 덮여있어 스쳐 지나가던 곳이었다.

신 대표는 "처음에 이곳을 본 순간, 자연이 너무 앓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모두 만류했지만, 이 부부는 이곳을 선택했다. 자연의 느낌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건물을 손질하고, 주변의 쓰레기더미를 치웠다. 그리고 땅힘을 기르기 위해 밀을 심었다. 2년 동안 심고, 갈아엎는 일만 계속했다. 부부의 애정으로 쓰레기더미였던 이곳은 서서히 탈바꿈해갔다. 10년이 넘은 지금은 누구나 좋아하는 '향기 정원'이 됐다. 수십 종의 허브들과 다양한 향기제품이 있다. 허브차와 허브 커피 등 이색적인 맛도 즐길 수 있다. 대구시에서도 '아름다운 가게'란 간판을 달아주었다.

취재차 방문하자 남편 조원영 씨가 허브 정원 '나무 아래 삶'으로 안내한다. 일반인에겐 '출입금지'구역이다. 그곳은 다양한 허브종류와 먹거리 채소들이 소담스럽게 자라고 있다. 화학비료나 농약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조 씨는 "여기는 잡초도 허브"라며 "고마운 땅을 사랑하면서 자연 그대로 식물을 재배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넓은 정원에 다양한 허브식물이 얼굴을 내민다. 익숙한 향인 라벤더와 로즈마리부터 보기 드문 '캐모마일''루'(rue)'레몬버베나', 향수의 원료로 사용하는 '헬리오 트로포트' '로즈 제라늄''애플 제라늄', 오일을 추출해 여드름 등 피부질환 치료용으로 이용되는 '티 트리', 잘게 찢어야 향이 나는 '레몬 글라스', 파스타에 첨가하는 '바질' 등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조 씨는 "흔히 로즈마리나 라벤더 등 특이한 향기가 나는 몇 종류만 허브라고 알고 있지만, 향이 있고 몸에 이로운 것은 모두 허브"라고 알려준다.

겨울이 되면 허브 위도 쉰다. 정원에 있는 수천 점의 허브들은 모두 온실로 간다. 부부도 '농한기'를 맞는다. 책도 읽고 미술관을 다니며 '감각 충전'을 한다. 세계적인 라벤더 산지인 일본 북해도 도미타농장과 유럽 등 허브 선진국으로 현장 공부를 하러 떠나기도 한다.

요즘 '허브 위'에서 가장 멋진 곳은 수 십 년 묵은 왕벚나무 그늘이다. 팔공산의 맑은 공기와 천의 향기를 선물하는 상큼한 허브향이 온몸을 감싼다. 온종일 앉아 있어도 지겹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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