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상 백일장] 빨래/꽃보다 사람이/나의 고백/폭포(瀑布)

♥수필1-빨래

이유는 달라도 스트레스는 누구에게나 있다. 난 아침마다 빨래를 한다. 혹자는 빨래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고도 한다.

멋 부리기 좋아하는 사춘기 아들, 개구쟁이 둘째 아들, 한꺼번에 한 보따리 쏟아내는 신랑 빨래들! 하루에도 여러 장 나오는 수건, 속옷, 양말, 티셔츠. 바지 등등. 빨랫감들을 분리하고 손빨래부터 시작한다. 친정엄마께서 만들어 주신 수제 빨랫비누는 그야말로 내 마음에 꼭 드는 명품 비누다. 애벌빨래를 마치고 나면 오래된 세탁기에 전원을 누른다. 나와 10여 년을 함께한 세탁기가 요즘 많이 아프다. 아래가 부식된 탓에 균형이 맞지 않아 돌아갈 때 원통이 쇳소리를 내며 운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땐 내 가슴에도 소리만큼 스크래치가 생긴다. 아마도 나처럼 나이가 들어서 낡고 기운을 잃고 힘이 달리는 모양이다. 기울어진 한쪽을 벽돌과 자갈로 균형을 맞춰 본다. 신랑은 요즘 새로 나온 드럼으로 바꾸라고 하지만 예전 통돌이 세탁기만 할까? 또 바꾸지 못한 가장 큰 이유라면 내가 시집오면서 친정 엄마가 마련해준 귀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 수명을 다할 때까지 버티고 버텨주는 우리 집 세탁기가 가끔은 내게 감동을 준다.

세탁기는 내게 있는 우울함과 온갖 잡다한 것을 하얀 거품에 섞어 깨끗하게 씻어준다. 돌고 돌아서 남아있는 여분 찌꺼기를 헹구고 드디어 바짝 탈수를 한다. 그리고 끝날 땐 '띵띵 띠리리'하며 노래까지 불러준다. 하얗고 깨끗하게 세탁된 가족의 옷들을 탁탁 털고 베란다로 간다. 햇살 좋은 요즘 같은 날씨에 행복을 반듯하게 늘어놓는다. 100점 맞은 어린애처럼 미소가 난다. 저 빨래가 바짝 마르고 개킬 때까지 난 하루가 행복하다.

서경아(김천시 평화동)

♥수필2-꽃보다 사람이

"꽃이 참 예쁘네요." "예, 우리 집 꽃은 주인을 닮아서 그런가 봐요." 꽃집 주인의 말이다. 재치 있는 말솜씨가 꽃보다 더 예쁘다. 노랑 빨강 보라, 팬지꽃의 생김새를 설명하는 그녀의 음성에는 향기가 배어 있었다. 집이 어디인지 배달까지 해 주겠다며 커피를 권한다. 거기다 덤으로 부레옥잠을 한 포기 쥐여 준다. 하나는 외로우니 두 포기는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내 부탁도 선뜻 받아주었다. 번식을 잘한다며 옥잠의 특성도 잊지 않았다. 역시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답다는 게 맞는 말이다.

수돗가 돌절구에 물을 채우고 옥잠을 띄워 놓았다. 집수리를 하다가 마당에서 캐어낸 보물이다. 오랜만에 세상에 나온 절구통이 옥잠을 반가이 맞아들인다. 무엇에 쓸까 생각 중이었는데, 우묵한 돌덩이에 생기가 돈다. 꽃집 주인이 본다면 뭐라고 할까?

절구통에 누운 옥잠이 한 덩이가 되어 파란 윤기가 조르르 흐른다. 바닥까지 내려간 뿌리도 서로 엉키어 한 몸이 되었다. 번식이 빠르고 쓸모가 별로 없어 천대받는 신세지만 부레에 몸을 뉘인 모습이 태평스럽기만 하다.

옥잠은 부레에 눈이 생겨 뿌리가 나고, 새로 생긴 부레가 또 새끼를 친다. 때로는 바람에 씨앗을 날려 그 수를 늘려간다고 한다. 비록 좁은 절구통이지만, 부레에 눈이 틀 때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녀의 재치도 주렁주렁 달리리라.

김정구(대구 북구 태전동)

♥시1-나의 고백

부끄러운 지난 일들을

가슴속에서 꺼내어 햇볕에 말려보자!

한여름 뙤약볕에 까칠까칠해질 때까지

자신과의 약속을 수없이 반복하며

다짐했던 착오의 일들이 사체가 되어

가슴속 심장에 엉겨붙어있다.

가슴에 심장이 빠져나간 얼굴은

거울 속에 어떻게 나타날까

검은색일까 흰색일까

이제는 까칠하게 말린 심장을

광목홑청으로 닦아 가슴속에 차곡차곡 담아보자!

코를 벌름거리게 향기나는 가을꽃처럼

온 세상 행복의 향기를 뿌려보자!

허이주(대구 달서구 성지로)

♥시2-폭포(瀑布)

한 방울

한 방울

모으고 모아서,

큰 물줄기 이루어

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해,

밤낮으로 낙하하며,

제 몸 스스로 부수고

살아가는 너!

높은 곳보다는

낮은 곳을 지향하며,

떨어져야 살아있는 숭고한 뜻이,

하이얀 포말 포말에 담겨 있음을

알려주는 너!

언제나 높은 곳만 생각하고

낮은 곳을 외면하는 속인(俗人)들에게,

자신을 버리며 산산조각 내어,

살아 있는 교훈을 만들어

방울방울 맺힌 뜻을,

우리의 가슴속에 곱게 심어 주는,

떨어져 살아가는 너!

정창섭(밀양시 내이동)

※지난주 선정되신 분은 여환탁(영천시 교촌동) 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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