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명수의 집중 인터뷰] 국회 전반기 부의장 후보 이병석 의원

"국회선진화법 시행…몸싸움 구태 탈피 의회주의 구현 앞장 설 것"

'정치인의 삶은 야전(野戰)과 같아야 한다'

이병석(60) 새누리당 의원의 정치지론이다. 정치를 야전으로 여기며 정치를 해 온 그가 지난 총선에서 4선 고지에 오르는 데 성공한 데 이어 19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 후보로 선출됐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간의 개원협상이 교착되면서 아직 국회의 문이 열리지 않고 있지만 이 의원은 국회가 개원하는 대로 국회부의장에 선출돼 국회의장단의 일원으로서 새로운 국회운영에 직접 나서게 된다.

사실 이 의원은 포항에서 내리 4선을 한 억세게 운 좋은 정치인이지만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자신만의 정치적 색채나 선수에 걸맞은 정치인으로 자리 잡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3선이면 누구나 맡게 되는 국회 상임위원장으로 국토해양위원장을 맡고 원내수석부대표를 지낸 것 외에는 이렇다 할 국회직이나 당직운이 없었다. 2010년 원내대표 경선에 도전했지만 4선의 김무성 의원에게 당화합을 명분으로 양보하면서 중도포기했다가 2011년 원내대표 경선에서는 황우여 대표에게 패한 적도 있다. '정치인' 이병석은 지금껏 그저 그런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이 사실이었다. 지역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비교되면서 상대적인 손해(?)를 봤다.

그런 그가 이달 1일 치러진 새누리당의 국회의장단 후보 경선에서 '친박계'정갑윤 의원을 누르고 새누리당 몫 국회부의장 후보로 선출된 것은 정치적으로 새롭게 각인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언제 국회가 개원할 수 있을지 종잡기 어려울 정도로 여야협상이 교착된 상태지만 국회부의장 후보인 이 의원을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이상득 전 부의장이 17대 국회 후반기에 국회부의장을 맡은 이후 6년 만에 다시 포항출신 국회의원이 국회부의장을 맡게 됐다는 점에서 모처럼 포항에서는 수백여 개의 당선축하 플래카드가 내걸리는 등 지역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당이 우선으로 필요로 하는 일을 위해 대의에 맞게 접근해온 것에 대해 이번 국회부의장 후보 경선에서 동료 의원들이 좋은 평가를 해 준 것으로 생각하고 또, 당직에 연연하지 않고 의회주의자로서 입법부의 중요한 역할을 더 사려 깊게 해나가는 기회를 준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

그는 자신을 '의회주의자'로 칭했다. 4선 국회의원을 지내는 동안, 원내정치에 몸을 담고 그렇게 해 온 것이 바로 의회주의자로서의 길을 걸어온 것이라고 했다. 아직 국회부의장에 당선돼 취임한 것은 아니지만 그에게 국회부의장은 새로운 도약을 위한 디딤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의회주의자로서 이병석의 정치는 이제 시작"이라고 답했다.

대한민국에서 정치는 의회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정치인은 자신의 비전을 국회에서 국민들에게 내세우고 평가받으면서 자신의 역량을 확장시키고 훈련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오랫동안 국회에서 '의회주의자'로서 수업을 쌓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 정치사의 주요 정치인들이 의회주의자로서의 리더십을 가꾼 후 더 큰 정치로 확장시키면서 봉사했던 만큼 이들은 대부분 국회에서 의회주의 훈련을 6선에서 9선까지 이어왔다. 그러나 의회에서 더 리더십을 쌓지 않고 돌출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등 그런 지도자들의 정책은 국민들에게 안정감 있는 리더십을 보여주기에는 다소 부족했다."

이 의원의 언급은 노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두면서 국민들과의 소통에 문제를 보이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까지 겨냥하는 듯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국회를 통해 의회주의 훈련을 제대로 거친 지도자가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언급이었다.

그는 "4선을 거쳐 다져진 여러 정책과 비전을 앞으로 국민들에게 선보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며 국회부의장을 넘어서는 더 큰 꿈이 있다는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감추지 않았다.

일찍부터 이 의원은 정치에 뜻을 뒀다. 포항에서 초중고를 나온 그는 대학(고대)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땄고 유학생활을 거쳐 YS정부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과 정무비서관으로 사실상의 정치를 시작했다.

그는 "정치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세상을 바꿀 가장 적절한 공간이 정치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서울로 가출을 하면서였다."라고 고백했다.

당시 그는 포항 죽도시장에서 좌판행상을 하던 어머니의 고달픈 생활을 지켜보다가 자식이 옆에 있는 것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밤기차를 타고 야반도주하듯, 서울로 갔다고 말했다. 그때 이후 자신의 정치신조를 '여민동락'(與民同樂)으로 잡았다. 기쁨과 슬픔을 국민과 함께 나누고 어울리겠다는 뜻이다. 그 생각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변함이 없었다고 했다.

국회부의장으로서의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도 궁금했다.

그는 우선 국회의장단의 일원으로서 입법부가 수행해야 할 역할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됨에 따라 이번 국회에서는 더 이상 국회부의장이 국회의장을 대신해서 '날치기'나 '변칙처리'라는 악역을 맡게 되는 일은 없어졌다.

"국회는 말 그대로 '민생'국회로,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의 아픔과 일자리창출 등 민생을 확충하는 데 정확하게 초점을 맞춰서 일하는 국민의 국회로 거듭나야 하고 의장단의 역할은 그것을 지원하고 이끄는 것이다."

이것 외에 이 의원은 당적을 가진 국회부의장으로서 여야관계를 푸는 막후조정역할도 하겠다고 밝혔다. 국회는 여야 교섭단체의 대표인 원내대표 간 협상을 통해 운영되지만 당대표는 물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각각 1석씩 차지하게 되는 국회부의장들 간의 막후접촉을 통해서도 실타래처럼 꼬인 여야관계를 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의원외교활동 지원에도 보다 신경을 쏟겠다고 밝혔다.

다원화된 국제사회에서 각국이 국가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마당에 정부차원의 공식화된 외교채널 외에 다양한 외교활동을 통해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런 점에서 의원외교활동은 정부의 외교활동에 못지않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그의 경험이자 지론이다.

"의원외교활동을 활성화한다면 세계 각국과 광범위하고 다양한 채널을 확보할 수 있는데다 정부와 공조해서 지원하는 형태를 잘 활용한다면 국가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동반외교가 될 수 있다."

포항출신 이명박 대통령의 존재는 정치인 이병석에게 오히려 걸림돌이자 족쇄가 됐다. 그는 이런 지적에 절반쯤은 동의하고 절반쯤은 인정하지 않았다. "포항이 (이 정부에서)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보는 시민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선당후사'(先黨後私)의 각오로 대통령을 배출한 도시로서 대통령께서 명예롭게 임기를 마치는 것이 포항시민들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라는 생각에서 우리가 어떠한 불이익을 받더라도 그것이 대통령을 명예롭게 하는 일이라면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다."

포항이 지역구인 그가 당당하게 경선을 통해 국회부의장 후보가 됨으로써 그는 지금껏 참아왔던 불이익이 어느 정도는 보상된 것이라고 (포항시민들이)여겨주길 바라는 듯했다.

사실 지난 국회부의장 경선은 박근혜 전 대표가 장악한 새누리당에서 '친이계'핵심으로 분류되고 있는 이 의원과 친박계 정갑윤 의원의 계파간 대결양상으로 전개되면서 이 의원이 불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그런 계파대결 구도가 이 의원 당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의원은 '계파'라는 말은 더 이상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새누리당에 더 이상 계파는 없다고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친박계 독식이라는 언론의 비판적 시각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별로 필요한 인재가 적재적소에 배치되는 등 균형이 맞는 인사라고도 평가했다.

그에게 정치는 '야전'이다. 그것은 국민들의 변화욕구가 시와 때를 정해놓고 정해진 틀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달라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치권의 위기도 전혀 사전 예고 없이 다가오고 그것이 때로는 엄청난 강풍으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정치에 대한 변화욕구로 분출되는 것이 우리 정치사였다.

그래서 그는 "정치는 기본적으로 야전적 시각에서 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정치현장이라는 '야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국민에게 다가가는 데 자기 스스로 장벽을 만들어내서는 안 되고 자기 관리를 적절히 하면서 끊임없이 변하는 국민의 눈높이를 따라잡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시도 마음 놓을 수 없는 것이 야전적 정치인의 자세인 셈이다.

포항은 요즘 포항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지난 총선과정에서 제수 성추행 의혹논란을 빚은 김형태 의원 문제에서부터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구속 등 이 정부의 포항출신인사들이 연루된 각종 사건들이 포항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포항을 대표하는 중진정치인으로서 중앙무대에 우뚝 서게 됐다. 10년째 여름마다 포항에서 영업용택시를 몰면서 민심을 호흡하고 있지만 국회부의장을 맡게 된 그가 다시 그런 험한(?)일을 중단하는 것은 아닌지 주목받을 수도 있다.

그는 "포항을 중심으로 제기된 여러 문제에 대해 안타까운 생각"이라면서 "당사자와 관계자들이 포항시민인 것을 자랑스럽도록 하기 위해서는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에 따라 스스로 자신과 주변을 정리하는 좋은 모습을 시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형태 의원을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의원직 사퇴문제는 스스로 풀어야 한다는 포항시민들의 여론을 담은 강한 압박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서명수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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