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0편의 詩 모이니 1970년대 대구 풍경

연작 시집 '대구' 낸 상희구 시인

35년을 대구에서 살았다. 살아온 날들의 절반이다. 나머지 반은 서울에서 살았다. 상희구(71) 시인의 마음 속 시계는 1970년대 대구에 멈춰 있다. 그가 기억하는 풍경, 사람, 말투, 풍속 모두 흑백사진 속 얼굴처럼 주름이 늘지 않는다. 시인은 머릿속에 남겨둔 사진들을 퍼즐 맞추듯 그러모았다. 100편의 연작 시는 한데 모여 그 때 그시절 대구의 풍경이 됐다.

대구의 과거 생활 풍경을 사투리로 풀어낸 연작시집 '대구'를 펴낸 상희구 시인이 8일 고향을 찾았다. 1942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35년 간 대구에 살다 서울로 이주했다. "대구를 떠나있었기에 그 당시 말투나 풍경을 그대로 기억하는 것 같아요. 젊은 시절 체험과 힘들고 고통스러울때마다 헤맸던 골목과 강, 계곡의 기억을 누룩으로 술을 빚듯 시가 된 것 같습니다." 상희구 시인은 지난해 4월부터 10개월에 걸쳐 '현대시학'에 모어(母語)로 읽는 연작 장시 '대구'를 연재했다.

'용두방천에는 돌삐이가 많고/무태에는 몰개가 많고/쌍디이못에는 물이 많고/깡통골목에는 깡통이 많고/달성공원 앞에는 가짜 약장사가 많고/진골목에는 묵은디 부잣집이 많고/지집아들 짱배기마중 씨가리랑/깔방이가 억시기 많고/칠성시장에는 장화가 많고/자갈마당에 자갈은 하나도 안보인다.'(대구 풍물 중에서)

이태수 시인은 "투박한 사투리 속의 질박한 삶과 그 잃어버린 무늬들을 회고와 회귀의 정서로 되살려 삭막한 오늘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고 평했다.

가장 도드라지는 공통점은 사투리다. '알분다이', '짱배기에', '호무래이' 등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낱말도 많다. "풍부한 사투리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습니다. 어머니는 동네 아이들의 별명을 지어주는 게 낙이었어요.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꼬마에게는 '돌라뱅구', 또래보다 덩치가 작은 아이는 '딸보'라는 식이었죠." 그의 대구 연작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지금까지 대구를 주제로 쓴 시만 300여 편이나 된다. 그는 "1천편을 쓰겠다고 공언도 했지만 힘들 것 같고, 500편은 꼭 쓸 생각"이라며 "새롭고 현대적인 감각을 어떻게 접목시킬 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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