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욕설 난무 세상, 밥 먹으러 와서 '욕 먹기'의 카타르시스…

지역마다 '명물 할매' 주로 식당, 험한 말 쓰지만 손맛에 인심 두둑

대구의 대표적인 욕쟁이 할머니인 변운자 씨가 자신이 욕을 잘하게 된 사연을 설명한 후, 시원하게 욕을 한번 날려줬다.
대구의 대표적인 욕쟁이 할머니인 변운자 씨가 자신이 욕을 잘하게 된 사연을 설명한 후, 시원하게 욕을 한번 날려줬다.
충청도 욕쟁이 할머니 고(故) 김유례 씨. 욕쟁이 할머니의 전설이 됐다.
충청도 욕쟁이 할머니 고(故) 김유례 씨. 욕쟁이 할머니의 전설이 됐다.

욕은 대체로 부정적인 언어다. 들어서 기분 좋은 일이 별로 없다. 특히 악의적인 감정이나 비난하려는 의도로만 사용될 때는 듣는 사람은 치욕적이고 모욕감마저 들게 된다. 그 정도가 심하면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부모나 조상을 욕되게 하는 말은 더욱 삼가야 한다. 큰 싸움으로 번지기 일쑤다.

2012년 현재 대한민국의 말 사용실태는 참담하다. 여중'여고생까지 어원조차 모를 '졸라' '존나게' '씨발! 조('ㅅ'생략)도' 등의 욕을 입에 달고 다닌다. 지상파 방송마저 막말이 여과 없이 튀어나오고, 케이블방송에서는 심한 욕설까지 그대로 방영된다. 영화는 말할 것도 없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조직 폭력배들의 언어가 일상 언어처럼 도배하고 있다.

하지만 욕에도 긍정적 기능은 있다. 이른바 욕의 카타르시스다. 우리말로 마음속 정화기능이라고 할까? 구수한 욕 한마디는 오히려 정겹게 다가오기도 하고, 가슴속에 담긴 말을 가벼운 욕을 통해 뱉어내면 가슴이 뻥 뚫린다. 그래서 욕하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을 찾는 손님들도 많다. 이들 '욕쟁이 할머니'는 왠지 모를 친근감을 주기도 한다.

◆대구 욕쟁이 할머니, 변운자

"이젠 힘이 없어 욕도 못한다. 그만 처씨불락거리고 고기나 처묵고 가라!" "주디 안 닥칠래? 칼로 확 잡아째뿔라? 대가리 안 깨질라면 자꾸 씨부리지 마라!"

대구 북구 산격동 EXCO 인근에서 새대영 식육식당을 8년째 운영하고 있는 대구의 욕쟁이 할머니 변운자(68) 씨는 욕을 잘 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연을 갖고 있었다. 서구 중리동에서 20년 가까이 식당일을 하다 2000년 도살장 인근에서 포장마차를 2년 동안 했다. 이때 막일을 하는 손님들이 많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말이 거칠고 행동도 폭력적이었다. 이에 맞대응을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욕쟁이가 됐다는 것이다. 'XX년, 고기 빨리 안 갖고 오나!' '고기맛도 X도 더럽게 없네! 돈 안 내고 그냥 간다. 에라이∼, X년' 등 입에 담지 못할 정도의 욕설과 행패에 맞서야 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변 씨는 포장마차를 그만두고 식당을 운영했다. 욕이 입에 배어 한 번씩 편한 손님들에게 욕을 날려줬는데 반응이 좋고, 이후로 '욕쟁이 할머니'로 통하며 팬들까지 생기게 된 것이다. 이 팬들은 식당 안에 '욕쟁이 할머니한테 할 말 하세요!'라고 쓴 플래카드를 걸어놓았다.

지금도 이 식당을 찾은 손님들은 "할매! 욕을 안 하니까 고기가 맛이 없습니다. 욕 좀 해주이소"라고 성화를 부린다. 그러면 마지못해 변 씨가 대꾸를 해 준다. "아따! 지금은 욕 안 한다. 힘도 없고. 아가리 닥치고 고기나 처무라!" 이 말을 듣고 난 손님들은 한바탕 웃고 난 뒤, 맛있게 고기를 먹는다. 욕을 듣고 난 뒤, 손님들의 말문도 틘다.

변 씨는 "지금은 심한 욕은 하지 않습니다. 고객이 최우선인데요. 하지만 분명 이런 부분은 있습니다. 욕을 실컷 얻어먹고 싶어서 오는 사람에게는 분명 속시원함이 있을 테고, 기분이 나쁘지 않다면 제가 해 줄 수가 있지요"라고 욕 예찬론을 펼쳤다.

◆명맥 잇는 대구 욕쟁이들

욕 잘하는 것도 자랑인 시대다. 중학교 1학년 한 여학생은 인터넷에 욕 잘하는 법에 대해 자문을 구했고, 이내 답변들이 붙었다. 첫째, 욕은 상대방이 말을 못하게 연속으로 함. 둘째, 기에 눌리면 말을 잘 못하니까 속사포로 말을 할 것. 예를 들면, '야! 니가 그렇게 잘 낫냐?'고 상대가 도발해 오면, '어쩌라고, XX년아! 미친년이 왜 개지랄이야!' 또는 '너 같은 새끼랑 한 세상 한 나라 한 학교 한 반에서 숨 쉬는 것조차 역겨워. 찌질아!' 등으로 바로 받아치라는 것 등이다. 이런 세상에 욕쟁이 할머니 등은 청량제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대구 달성초교 네거리에서 원대지하도 방향으로 30m쯤 오른쪽 골목에 유명한 닭국수집이 있다. 문패도 전화번호도 없는 이곳에는 욕쟁이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다. 영업은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오전 11시 59분에는 절대로 입장불가. 혼자서도 갈 수 없는 곳이다.

지긋한 나이의 두 '이모'가 있는데 그중 큰 이모가 욕쟁이다. 작은 이모는 군기반장. 손님들은 식당에 들어서면 이 두 이모의 말에 절대복종해야 한다. 아니면 걸쭉한 욕(?)을 얻어먹거나 퇴짜를 맞기 일쑤다. 대구의 미식가들은 줄을 서고, 욕을 들으면서도 이 식당의 독특한 맛 때문에 계속 찾는다.

한 언론인은 '세상 풍파를 한 바퀴 돌아 쓴맛, 단맛 다 느낀 할매의 욕은 삶의 양념'이라고 표현했다. 대구경북에도 이런 욕쟁이 할머니들의 얘기는 살아있다. 1970, 80년대 경북도지사들이 예고 없이 왜관에 있는 욕쟁이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을 찾은 일이 있었다. 도지사들은 그곳 할머니에게 '니 밥 니가 알아서 처먹어라'라는 말을 듣고, 어쩔 줄 몰라 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지역에는 현풍 욕쟁이, 원대동 욕쟁이, 칠성동 욕쟁이, 서문시장 욕쟁이, 왜관 욕쟁이, 경주 욕쟁이, 포항 욕쟁이 등 각 지역마다 대표급 욕쟁이들이 활동하고 있다.

◆전국구 욕쟁이, 대통령에게도…

지역마다 욕쟁이 할머니가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런 욕(?)을 얻어먹고도 또 그 할매 집에 수고스럽게 찾아간다는 것. 왜냐? 그 욕 속엔 악의(惡意)가 없고, 오히려 걸쭉한 욕지거리를 통해 구수한 입맛을 느낀다. '그만 처무라'며 욕을 하면서도 손으로는 반찬 한 움큼 더 얹어주는 인심에 손님들은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5년 전 대선에서 선거광고에 출연해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욕쟁이 할머니' 강종순(72) 씨는 유명인사가 됐다. 당시 선고광고에서 유력 대선후보였던 이 대통령에게 "배고파? 우리는 먹고살기도 힘들어 죽겄어. 이눔아! 청계천 열어놓고 이번엔 뭐 해낼껴? 밥 처먹었으니까 이제 경제 좀 살려라 잉∼, 알긋냐?"라며 구수한 욕설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줬다. 이 광고는 후보와 유권자 사이에 친근감을 높여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은 이 욕쟁이 할머니가 어려워져, '욕쟁이 할머니 포차'로 다시 개업을 했다고 하자, 당선 직후 깜짝 방문을 하기도 했다.

감동적인 욕쟁이 할머니 사연도 있다. 홀몸으로 억척같이 살며 설렁탕을 팔아 모은 전 재산 1억원을 충북대에 기부해 화제가 됐던 고(故) 김유례 할머니. 이 할머니는 29세에 남편과 사별하고 대폿집도 하고 식당도 운영하며 3남매를 키우며 살았다. 음식 솜씨가 뛰어나 대폿집을 할 때는 빈대떡이 맛있다고 소문이 났고, 이어서 문을 연 설렁탕식당은 '욕쟁이 설렁탕집'으로 청주의 명소가 됐다. 이 할머니는 상대가 누구이든 이름이나 직함 끝에 놈자를 달아줬다. 만약 시장이 오면 "시장놈! 오랜만에 왔네"가 인사말이 된다. 장관이 찾아와서 큰소리를 치면, "뭐하는 놈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거드름을 피워? 장관이면 네놈의 장관이지 내 장관이냐?"라고 욕을 더 세게 퍼부은 걸로도 유명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욕=욕설과 같은 말. 아랫 사람의 잘못을 꾸짖거나, 부끄럽고 치욕적이고 불명예스러운 일을 말한다. '수고'라는 말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북한에서는 '욕이 사랑'이라는 말을 흔히 쓴다. 아끼는 사람을 욕하는 것은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뜻이 있으므로 사랑의 표시라고 한다. 욕과 관련된 어휘로는 모욕, 꾸중, 악담, 야단, 고생, 불명예, 악다구니, 욕지거리 등 부정적인 어휘들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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