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위내시경을 막 끝냈는데, 잠든 줄 알았던 수검자가 냅다 고함을 질렀다. 옆에서 설명하던 간호사의 목소리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수면 유도가 잘 되도록 어둡게 해둔 조용한 공간이 금방 말싸움 장으로 변해버렸다. "도대체 약을 제대로 넣은 겁니까? 이렇게 힘들게 할 바에는 수면을 왜 합니까?" "한숨 주무시면 기억을 못합니다. 일단 좀 주무세요."
고통스럽게 했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사람한테 억지로 자라고 하면 잘까? 수면제를 맞아서 몽롱한 상태에서 의학적인 지식만 나열해대는 간호사의 목소리는 그를 자극만 하고 있었다. 그저 부드럽게 다독거리면서 다시 수면이 들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명령하면서 주무시라면 잠이 오나요? 의사에게 설명을 들어라며 내게 미루면 될 일을…. 사과부터 하세요."
어찌 됐든 내시경실에서 보조를 잘 맞춰 주는 그녀에게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잘 모르겠다. 대부분의 사람은 미다졸람이라는 수면 유도제를 주사하면 1~2분 이내 잠이 든다. 그러나 드물게는 난감하게도 내시경을 시작하면서 잠에서 깨어버린다.
그래도 다시 잠이 들게 하면 잠시 후 그들은 고통스러웠던 내시경 기억을 깡그리 잊어버린 채 가뿐하게 검사실을 나간다. 그날도 그런 상황이었다. 다시 잠 들게 하는 기술은 바로 다독거리는 친절함이다. 경험 상 내시경실에 처음 근무하는 간호사는 그런 언쟁 따위에는 휘말리지 않는다. 일은 형편없이 서툴지만. 몇 개월 뒤 익숙해지면서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난다.
뭐든 익숙해지면 편하다. 어려운 일도 반복하다 보면 능수능란해진다. 기술은 점점 늘어 가고 처음에 한 노력의 반만 기울여도 현상유지는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 일을 처음 시작할 때의 순수함과 설레임을 잊게 된다.
지금껏 수백 명의 말기암 환자를 돌보았다. 암성 통증은 분명히 처음보다 조절이 잘 되는 것 같다. 휴일에 틈만 나면 받던 병동 부름도 이제는 한두 번으로 줄었다. 간간히 매스컴도 타고 했으니 이제는 유명한 호스피스 전문의사가 된 것 같다. 겨우 5년 만에.
내시경실의 수검자는 불편하면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내 환자는 다르다. 잘해도 칭찬할 수 없으며 못해도 비난을 할 수 없다. 신생아처럼 몸이 약해진다. 그만큼 호스피스는 인간이 인간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일이다. 그렇지만 고백하건데 나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분순 할머니가 처음 왔을 때의 두근거림은 사라졌다.
잘못하면 호스피스 괴물로 변할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도 생긴다. 첫 마음을 기억하는 일. 그것이 내가 호스피스하면서 의학적 지식을 많이 쌓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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