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慶北大)가 왜 이러나. 한때 서울대와 1, 2위를 겨루던 경북대였다. 일찍이 의과대학은 서울대 앞줄에 있었고 19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의 과학입국(立國) 정책의 산실(産室)이었던 전자공학부 덕에 1990년대 이후 전국 IT 기업 핵심 임원 자리를 공대 출신이 싹쓸이하다시피 했던 경북대!
그래서 경북대 전자공학과 총동창회가 열리는 날에는 전국의 IT 회사와 공장이 올 스톱된다는 풍자까지 나왔던 대학이었다. 그 대학이 어느새 숫돌 삭듯 전국 대학 서열 중 15위로 추락해 있다. 캠퍼스 곳곳엔 비가 새고 3만 학생과 2천여 교수들은 이웃 영남대나 대구대 같은 사립대의 3분의 1도 안 되는 좁은 캠퍼스 안에서 복작댄다. 정부와 지자체 예산 지원도 부산이나 호남 지역에 비하면 한마디로 푸대접을 넘어 쪽박에 찬밥 던져주기 수준이었다. 의'약학 분야 하나만 봐도 지난 10년간 경대 쪽으로 지원된 돈은 약 1천억 원 안팎. 거기 비해 부산대 등엔 약 1조 원이 지원됐다. PK 노무현 정권 시절을 감안해도 10곱절이다. 호남? 전남대 등은 3천억 원 넘게 받아갔다. 의료 수준, 기초의학 수준이 아직은 상위권이라는 메디시티 대구와 의학 심장부 경대 의대가 받은 턱없는 수모였다. 올해 따온 300여억 원의 시설비 예산처럼 총장이 교육부 심기 건드려가며 국회 쪽으로 뛰어서 따내 오는 예산이 아니면 당장 끼니 때울 예산도 모자랄 지경이다.
왜 이 모양 이 꼴이 됐는가. 역대 총장이 무능해서? 교수들이 못나서? 아니면 똑똑한 자녀들은 너나없이 서울로 미국으로 유학 보내는 학부모와 지역사회 책임? 따져낼 수 있다 해도 지금 그게 무슨 소용인가. 이 시대의 대학은 일단 재정이 허약하면 학문적 역량도 허약 체질이 되기 쉽다. 세계 거의 모든 대학들의 추세고 경영의 흐름이다. 돈이 대학의 명예와 학문적 우위 내지는 교육의 질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과연 옳은 현상인가는 분명 논란거리가 된다. 대학이, 더구나 국립대학까지 돈 되는 학과만 살려놓고 돈 안 되는 학과는 사멸시키는 장삿속 경영에 오염되는 것은 분명 옳은 흐름이 아니다. 단 한 명의 학생이 있더라도 국립대만큼은 철학도 가르치고 인기 없는 인문학의 뿌리도 배우게 해야 한다.
교육이 본연인 상아탑다운 장(場)이 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돈도 있어야 하고 재정 확보를 통한 명예 지키기도 필요하다. 경북대의 총장직선제도 그런 관점에서 풀어야 한다. 교과부가 국가 예산을 떡 가르듯 나눠주면서 직선제 없애는 대학에만 떡을 주겠다고 한 것이나, 예산을 대학 길들이는 당근과 채찍으로 삼아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입에 물린 당근도 뺏을 거야'라는 건 권력의 횡포다. 지난주 경북대가 직선제를 고집한다고 수백억 예산을 깎은 교과부의 압박에도 57%의 교수들은 직선제를 지지했다. '(예산) 못 먹어도 고(GO)'식의 불뚝 골 저항이라기보다 '대학의 명예를 돈으로 짓밟지 말라'는 지식 계급의 저항의 표출로 보여진다. 부작용 많고 조직을 조각 내는 직선제가 옳다고 믿어서라기보다, 억누르는 방법이 틀려먹었다는 반발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북대가 옛 명성과 명예를 회복하는 길은 '명예와 돈은 한 침대에 누울 수 없다'고 한 세르반테스의 말을 거슬러, 모로 눕더라도 같이 눕는 길뿐이다. 돈에 굴종해 명예와 자존(自尊)을 버리라는 게 아니다. 명예가 없는 대학이 돈만 안고 있어도 안 되지만 돈 없이 명예만 끌어안고 있어도 발전할 수 있다는 것 역시 거짓말이다. 결국 최대공약수를 찾는 것이 답이다. 어느 정도의 명예도 지키고 최대한의 실리(돈)도 챙기는 길, 그것은 다툼을 떠나 모든 결정을 구성원이 믿고 뽑아놓은 총장에게 맡기고 밀어주는 길뿐이다. 지금 총장이 내건 '직선제는 안 하되 추천위원회를 구성해서 뽑는 절충안'도 돈과 명예, 둘 다 지키는 방안의 하나다.
더 이상 다투지 말라. 지금 경북대의 옛 명성은 고비사막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리고 있다. 15등짜리 부끄러운 대학 만들어놓고 부질없는 집안싸움으로 더 이상 무엇을 얻어내고 도모하겠다는 것인가. 극소수 과격한 직선제 논쟁 그룹의 숨은 속셈이 뭔지도 지역사회는 간파하고 있다. 이해가 엇갈린 논쟁에 있어 완전한 최선은 없다. 지역 최고의 지성이 모인 대학답게 차선의 답으로나마 재도약하기를 당부한다. 그리고 교과부, 더 이상 국민이 맡긴 돈뭉치를 미끼로 대학의 명예와 자율을 휘두르려 들지 말라.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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