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후 전투에서 말을 탄 기병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컸다. 적군보다 수가 적을지라도 뛰어난 기병을 확보하면 전투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기병의 효율성은 등자의 등장으로 더욱 커졌다. 등자가 없는 기병은 두 다리만으로 말 허리를 조여 몸을 고정하고 말을 조종해야 했기 때문에 고달팠으나 등자를 사용하게 되면서 말을 원하는 방향으로 쉽게 움직이고 체력도 유지할 수 있었다.
등자는 아시아의 유목 민족이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중국과 아랍을 거쳐 서양에 도입됐다. 서기 378년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로마군이 등자를 사용한 고트족 기병들에게 철저히 유린당할 때만 해도 등자의 존재는 낯설었다. 로마 멸망 이후 유럽에서도 훈족의 영향을 받아 등자를 사용했지만,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8세기 이후로 알려졌다. 당시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 왕은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이슬람군 기병의 등자를 받아들여 전투력을 높였고 유럽 진출을 확대하려던 이슬람 세력을 막아낼 수 있었다.
등자를 채택해 막강해진 유럽의 기병은 신대륙 진출 과정에서 극적인 승리를 이끌어냈다. 1532년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체스코 피사로의 군대는 수백 명에 불과했지만, 기병과 총의 위력을 앞세워 남미 잉카 제국의 아타우알파 왕을 체포했던 것이다. 병사 수에서 중과부적이었던 피사로의 기병은 수만 명에 달했지만, 원시적 무기와 보병뿐이었던 잉카 군대에 전광석화처럼 파고들어 아타우알파를 사로잡았다. 전쟁 초기에 기선을 제압한 피사로는 이후 총과 기병을 활용, 저항을 계속한 잉카 제국을 멸망시켰다.
기병은 제1차 세계대전 때 탱크의 등장으로 사라질 때까지 오랫동안 존속했으며 이후 '등자 단 기병'과 같은 신무기가 무수히 쏟아졌다. 주한미군이 증강 배치하기로 한 지대지 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도 그러한 신무기 중 하나이다. 에이태큼스는 로켓 한 발로 축구장 2~3배 크기의 면적을 초토화하는 위력을 지녔으며 하늘에서 비처럼 파편이 쏟아진다고 해 '강철비'(steel rain)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에이태큼스의 증강 배치는 북한이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데 맞대응해 한반도 군사 전략을 강화하는 조치의 핵심 방안이다. '등자 단 기병'이 유용했듯이 '강철비'도 효과적이겠지만 한반도에서 군비가 증강되는 현실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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