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무한도전'과 함께 살아가기

'무한도전'에 대한 최근의 논란에 대해 한마디 보태려 한다. 즐겨보지 않았다면 그들은 '무한도전'이 동시대의 한국인, 특히 젊은이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짐작하기 힘들 것이다. MBC 파업으로 20여 주째 재방송으로 편성되고 있는, 사실상 결방 중인 '무한도전'의 이전 시청률은 15% 안팎이었다. 매우 높은 편에 속했지만 이 수치만으로 이 특별한 예능 프로그램의 자리를 말할 수는 없다.

미리 밝히자면 나는 '무한도전'의 팬이고 오래된 지지자다. 외주 제작설, 폐지설이 등장할 때마다, 온라인을 뒤덮는 격렬한 반대 여론에 나는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그렇다 해도 민주통합당이 이런 여론을 지지하고 나설 때는 뭔가 좀 불편하다. 그들이 박명수, 노홍철을 비롯한 '무도' 멤버들을 친구로 여기는가? 혹은 김태호 PD의 '돌+아이'(또라이) 기질을 진심으로 존중하는가?

직관적인 느낌이긴 하지만, 그럴 것이라고 믿어지지는 않는다. 동기는 다른 데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 예능이 간혹 드러낸 사회비판적 성향에 정파적 동질감을 느껴서가 아닐까? 혹은 MBC 파업에 부분적으로 함축된 정치적 저항의 성격에 대한 동조의 단순한 연장 아닐까?

앞서 말한 그 불편함은 아마도 나의 사적인 감정이 공적인 명분의 층위에서 거론되는 사태에 대한 불편함일 것이다. '무한도전'의 놀라운 성취는, 역설적이지만 어떤 공적인 성취도 이루지 않았다는 점과 연관이 있다. 나를 포함해 '무한도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무한도전'에 대한 극히 사적인 친밀감이 있는 것 같다.

이 친밀감이, '무도' 멤버들이 때로 웃기지 않아도 때로 재미가 없어도 그들을 떠난다는 것, 혹은 그들이 떠난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든 이유일 것이다. 한가지 사례가 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정형돈은 꽤 오랫동안 '웃기는 것 빼고는 다 잘하는' '어색한 뚱보'였다. 그는 분기에 한 번씩 웃겼는데, 그럴 때마다 무도의 지지자들은 즐거움에 앞서 안도의 느낌을 가졌다. 가까운 친구가 오랜만에 밥값 하는 걸 보고 안심하듯 말이다.

이런 특별한 친밀감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해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무한도전'은 잘 논다. 멤버들은 대개 미성숙해 보이고 이들의 놀이는 종종 유치하고 단순하지만, 그 유치함과 단순성이야말로 놀이에 대한 이들의 몰두를 충만하게 때론 거의 숭고하게 만든다. 쫄쫄이 옷을 입고 전동차와 달리기 시합을 벌이는 무모함과 무의미함이야말로 이들의 도전을 사랑하게 만드는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규범과 효용의 기준으로 제어되지 않은 원형적 놀이의 활력, 우리가 언젠가부터 잃어버린 그 충만의 기억을 '무한도전'은 상기시킨다.

공중파 예능에서 쌍벽을 이루던 '1박2일'에는 대개 목적지가 있고 종종 감정 교육에 이끌린다. 상대적으로 더 높은 시청률과 시청자들의 더 넓은 연령층은 이 사실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반면 '무한도전'에는 거의 목적지가 없으며 도덕적 호소도 없다. 이들은 기계적으로 놀이에 몰두하고, 기계가 되지 못하는 신체의 한계로 인해 망가진다. 경우는 다르지만, '봉숙이'를 부르는 밴드 장미여관이 우리를 사로잡았던 이유는, 음악적 성취 이전에 이들이 미숙한 청년의 유치한 유혹 놀이에 그토록 몰두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에는 탈일상적이고 초규범적인 놀이와 축제의 영역마저 정치와 자본의 논리가 장악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놀이는 프로모션의 공정이 되고, 즐거움은 계산되고 매뉴얼화되어 일종의 공산품처럼 제작된다. 그 틈새에서 '무한도전' 같은 '돌+아이' 놀이가 태어나고 지속되어 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육체는 성인이 되었지만 우리 속에는 대개 겁먹은 아이, 혹은 호기심을 멈출 수 없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를 억압함으로써 우리는 성숙의 가면을 쓸 수 있다. '무한도전'은 그 아이에게 손을 내민다. 거기엔 그 아이와 함께 7년을 보내온 미성숙한 어른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친구로 느낀다.

'무한도전'은 대체 불가능하다. 무도 멤버들 역시 대체 불가능하다. 이 사실을 권력자들과 정치가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다만 많은 사람들에게 '무한도전'이 없는 세상은 보다 외로워지고 더 우울해질 것이다.

허문영/영화평론가, 영화의전당 영화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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