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좋은생각 행복편지] 책 읽는 소리, 대한민국을 흔들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을 대학문국(大學問國)으로 만드는 길, 이 길만이 우리가 지난날에 이룬 경제발전의 기적 위에서 이제 사람답게 사는 선진국, 모든 국민들이 일상의 풍요를 누리는 가운데 정직하고 마음씨까지 따뜻한 그런 나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동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이야기인데요. 석유 한 방울 나지 않으며, 지하자원도 거의 없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의 하나이면서 그것도 반 토막 내 살고 있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선택할 길은 끊임없이 사람에 투자하고, 교육에 투자하고, 학문에 투자하는 것 외에는 딱히 길이 보이지 않는답니다.

그런데 학문을 하는 힘의 원동력은 문자에 의한 의사소통 능력, 즉 글을 읽고 쓰는 능력입니다. 그중에서도 기본은 읽기 능력입니다. 풍부한 책 읽기가 바탕이 되어야 좋은 글쓰기가 가능하니까요. 인간의 읽기 행위는 높은 수준의 사고력을 발휘하는 학습 기능이며 중요한 앎의 양식이요 창의적 지식 생산의 힘입니다. 그러니까 글을 읽어내는 힘이 장밋빛 미래의 육중한 바위 문을 여는 '열려라 참깨!'이며 대학문국으로 가는 왕도가 되는 셈입니다.

책 읽기의 기초'기본은 글자를 분별하여 알고 읽어내는 단계입니다.

1960년대 공민교육대라는 군사학교에서 장병들 중 문맹자를 따로 모아 한글을 가르쳤던 장교의 이야기인데요. 이 장병들이 고향에 두고 온 아내에게서 편지가 오면 몹시 부끄러워하면서 읽어 달라고 편지를 내밀 때, 사람이 글을 읽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막힌 사실인가 뼈저리게 느꼈었답니다. 하루는 어느 장병이 가져온 봉투 속에서 편지를 꺼냈더니, 백지 위에 다섯 손가락의 윤곽을 따라 연필로 서투르게 줄을 그어 놓은 다음 그 밑에는 '내 손이어요. 만져주어요'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애틋한 글이 딱 한 줄 씌어 있었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사랑의 편지이지요. 그 편지의 수신인이 글자를 깨치게 되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아내의 편지를 읽을 수 있게 되던 날, 그는 편지를 손에 든 채 큰 소리로 목 놓아 울더랍니다. 거룩한 독자의 대열에 입문하는 고고성이었겠지요.

2009년 국립국어원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 중 글을 전혀 읽고 쓰지 못하는 문맹자는 1.7%로 세계 최저 수준이라고 합니다. 훌륭한 한글을 만들어 주신 세종대왕님 덕분이겠지요.

읽기 행위의 본령은 바로 독해 활동입니다. 글을 읽고 그 의미를 제대로 재구성해내는 능력이지요. 예를 들어, 한글을 겨우 깨우친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가 자기 아버지가 보던 전문서적을 읽는다고 할 때, 글자는 한 줄 한 줄 소리 내어 읽을 수 있으나 그 의미는 전혀 떠올리지 못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처럼 글을 읽기는 읽으나 그 의미를 파악해 내지 못하는 수준을 두고 준문맹(準文盲) 또는 실질 문맹이라고 합니다.

텍스트의 이해 능력을 따지는 이 실질 문맹률에 관해서라면 우리도 큰소리칠 처지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05년에 발간한 '한국교육인적자원지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텍스트 독해 능력은 OECD 가입국 중 꼴찌랍니다. 세종대왕이 주신 좋은 선물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셈이니 크게 반성해야겠습니다.

읽기의 고차적인 단계는 창조적 읽기가 아닐까 합니다. 중세만 해도 집단적 행위였던 독서가 근대의 인쇄술과 개인주의의 발전에 터 해 지극히 개인적 행위로 변해왔습니다. 그리고 개인 독자로서 '나의 책 읽는 자유'란 결국 '해석의 자유'를 가진다는 뜻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도 성경을 가톨릭교회와는 다르게 해석하여 읽은 데서 비롯되었지요. 따지고 보면 모든 독서는 다 오독(誤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독단적이 아니라 독창적으로 해석해내는 창조적인 오독이 새로운 학문, 새로운 문화, 새로운 세상을 여는 길입니다.

글 읽는 능력의 퇴화는 자유의 상실이고, 문명의 뒷걸음질입니다. 소통의 부재를 부추기고,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며, 인간 존재의 품격을 떨어뜨리게 합니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추진하는 정책의 핵심 화두가 '독서와 한류'라지요. 갈수록 낮아지는 국민 독서율을 걱정하며 2012년을 '독서의 해'로 정하고 하루 20분, 연간 12권의 책읽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그 캐치프레이즈가 '책 읽는 소리, 대한민국을 흔들다'입니다. 우리의 책 읽는 소리가 높아지면 우리 대한민국이 더욱 크게 흔들리겠지요. 우리의 모습이 더욱 맑고, 밝고, 높아지겠지요.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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