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청탁 원고에 대한 소회

창작한답시고 펜대를 긁적거려 온 지가 어언간 서른 해 가까이나 되었다. 그러다 보니 심심찮게 원고 청탁을 받는다. 이따금 몸담고 있는 동인회로부터 받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잡지나 문예지에서 보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인지는 이름 그대로 뜻을 같이하는 동호인들이 모여서 내는 책이니 애당초 왈가왈부할 대상이 못된다. 여기서 문제 삼고 싶은 곳은 잡지나 문예지 들이다.

이들만 놓고 살피면 원고 청탁을 하는 측이 대략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지는 것 같다. 먼저 액수야 많든 적든 원고료를 주는 쪽이다. 이런 유형은 기실 가장 양반 축에 속한다. 그다음은 원고료는 주지 않고 대신 작품이 실린 책만 보내주는 쪽이다. 이런 유형도 그나마 최소한의 체면은 차리는 경우라고 하겠다. 그다음은 원고료도 주지 않고 책도 보내주지 않는 쪽이고, 가장 하급은 원고료며 책을 보내주기는커녕 도리어 글 싣는 데 따르는 비용을 청구하는 곳이다. 마지막인 네 번째 유형은 작가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짓뭉개 버리는 파렴치한 같은 인상을 준다.

원고 청탁을 받으면 나는 이 네 유형을 다시 철저하게 두 부류로 나눈다. 그중 하나는 원고료를 주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원고료를 주지 않는 부류이다. 원고료를 주는 곳이냐 주지 않는 곳이냐에 따라 내가 보내는 원고의 성격도 당연히 달라진다. 원고료를 주는 쪽에는 신작을 보내고, 주지 않는 쪽에는 이미 발표된 원고를 보낸다. 이를테면 작가에 대한 대접의 정도를 따져서 나 또한 그들에 대한 대접을 달리한다는 이야기다. 사람이 어찌 그리 속물적이냐고 몰아세운다 해도 나는 내 주의 주장을 꺾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응분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 무릇 세상 그 어떤 노동이든 거기에는 반드시 들인 노력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주어져야 마땅하다고 본다.

한번 생각해 보시라. 머리 싸매고 날밤을 새우면서 생산해 낸 노동의 결과물을 공으로 취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얼마나 작가를 홀하게 여기는 처사인가. 자기네들은 그렇게 받은 원고를 모아 책으로 엮은 뒤 독자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지는 않지 않느냐 말이다.

원고료 지불하지 않고 책 내는 일은 어찌 보면 올가미 없는 개장수 짓이나 마찬가지다. 애초부터 그런 마음으로 꾸려 갈 작정이었다면 아예 책 낼 뜻 자체를 갖지 말았어야 했으며, 더구나 좋은 잡지나 문예지로 이름을 얻겠다는 꿈은 접어야 할 것이다. 뿌린 대로 거두게 되어 있는 것이 인간사의 정한 이치 아닌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곽흥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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