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도용복의 지구촌 모험] <26> '독재국가' 투르크메니스탄

지워지지 않은 독재 흔적 "아직도 지켜보고 있다"

만약 당신이 독재국가의 지도자라면 과연 몇 년이나 권좌를 유지할 수 있을까? 권력 다툼과 음모, 암살 등 수많은 위험 속에서 당신은 얼마나 오랫동안 나라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까. 이디아민, 카다피, 카스트로 등은 그러한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굳건한 감시망과 철권통치 체제를 구축했다. 북한의 '오호담당제' 역시 철저한 주민감시망의 일환이다. 이번에 찾은 '투르크메니스탄'은 그런 면에서 한때 일반의 상식을 뒤엎을 정도였다. 투르크메니스탄은 '투르크멘 사람들이 세운 땅'이라는 뜻이다. 오랫동안 구 소련연방의 일원으로 있다가 1991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과 함께 독립했다. 1992년에 우리나라와 국교가 수립되어 수천만달러에 달하는 교역을 하고 있다. 지금은 수도 '아슈하바트'의 도로변에서 우리 기업의 간판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엽기 대통령으로 악명 떨친 나라

2006년 12월까지만 해도 '투르크메니스탄'은 엽기 대통령으로 전 세계에 악명을 떨쳤다. 악명의 주인공은 사파르무라트 니아조프 전 대통령. 그해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까지 21년 동안 그는 종신 대통령의 지위를 가졌다. 그는 수도와 전국 각지에 자신의 동상을 세웠다. 금박을 입힌 높이 20m 동상은 태양을 따라 시간당 15°씩, 하루에 한 바퀴를 움직였다. 항상 대통령이 지켜보고 있다는 감시의 상징처럼 보였다.

'아슈하바트'로 들어서면 건물 벽과 옥상, 그리고 실내 곳곳에 니아조프 대통령 사진이 걸려 있었다. 심지어는 화폐와 술병에까지 대통령 초상이 각인됐을 정도이니 돈거래나 술 마실 때면 그 얼굴을 보고 뜨끔했을 터. 그의 발상은 도를 지나쳐 사막기후인 곳에 얼음궁전을 지으라고 지시하는가 하면 유학파 의사나 변호사, 교사들을 자국에서 학위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하는 등 거의 '엽기 수준'으로 알려졌다.

정치학에선 상징조작의 기법으로 '미란다'와 '크레덴다'를 든다. 미란다는 동상을 세우고 화폐에 얼굴을 새기는 등 행위를 통해 '짐이 곧 국가'라는 인식을 심는 것을 뜻하고, 크레덴다는 이성적으로 종속시키는 것을 말한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선 '루나마'라는 책이 널리 읽혔다. 니아조프 대통령의 이야기를 집대성한 것으로 '영혼의 책'이란 뜻이다. 책을 간판처럼 만들어서 정해진 시간이면 책장이 펼쳐지게 시내 곳곳에 설치했다. 운전면허 시험에도 필수과목으로 정해 국민 모두가 외우도록 했다. 면허시험을 치르는 데만 16시간이 걸렸다.

◆모두가 통제 대상인 나라

독재국가인 때문인지 투르크메니스탄은 입국부터 쉽지 않았다. 국외에서 들어오는 건 모두 통제 대상. 비자 발급이 1차 관문이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투르크메니스탄'으로 들어가는 비자를 발급받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렸다. 공항에 도착하고선 입국 심사대에서 다시 2차 검문을 했다. 분실했다 찾은 여권을 새 여권과 합본했다고, "왜 여권이 2개냐, 어느 것이 진짜냐"며 괴롭혔다. 손짓 발짓 다 해가며 몇 시간을 고생한 끝에 겨우 수속 완료. 하지만 이번엔 경찰들이 몰려들어 "카메라가 왜 크냐, 뭣 때문에 렌즈가 크냐, 캠코더는 왜 가져왔느냐"며 3차 검문을 시작했다. 공항을 빠져나왔을 땐 녹초가 돼버렸다.

말 그대로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아슈하바트'. 도로가 아주 반듯한데다 차량이 별로 없어 보행자를 위한 건널목 표시 외에는 별다른 차선 표시가 없을 정도로 단출했다. 다니는 차량들이 별로 없다 보니 인명사고도 거의 없었다. 절경은 대통령궁 앞에 위치한 공원이었다. 외국산 나무와 수입 꽃들, 인공 폭포와 분수가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밤이면 휘날리는 물보라 위로 화려한 조명이 뿌려져 하나의 작품으로 어우러졌다. 공원 속 대통령 동상 사이로 대통령의 아버지, 어머니 동상까지 금빛으로 세워진 걸 보는 순간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세계 4위의 자원 부국

'아슈하바트'만 보면 부자 나라처럼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 4위의 천연가스 생산과 산유국임을 자랑하는 자원 부국이다. 대낮에도 가로등이 켜져 있고 요리를 하지 않아도 화덕에서 가스불이 활활 타올랐다. 가스비를 비롯한 대부분 공공요금은 거의 무료. 비행기 삯을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편도 2천800원, 왕복 5천30원 정도였다.

하지만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비포장도로에, 아이들까지 일터로 향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이곳저곳 혼자서 둘러보다간 큰코다친다. 국가 지정 가이드를 대동하지 않으면 체포되기 일쑤였다. 가이드의 공식 임무가 외국인 감시감독이니 두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한번은 시골마을에서 사진 촬영을 하다가 경찰에 연행된 적이 있다. 산책 나왔다가 주민들이 일하러 가는 장면을 찍었는데 그게 문제가 된 모양이었다. 건장한 청년들이 '수사요원'이라고 밝힌 뒤 무조건 끌고 나갔다. 차근차근 되짚어 보았다. '혹시 아이들이 노역에 동원되는 걸 찍었나.' 재빨리 사진과 테이프를 지워 버렸다. '여행가'라며 설득하기를 수백 번 거듭해서야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독재자 사망 이후 개혁 정책 박차

니아조프 사망 이후 정권을 잡은 베르디 무하메도프 대통령은 지금 개혁 정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20년 구각을 단숨에 벗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혹여 조직이나 기업에서 또는 개인적으로나마 제왕의 지위를 꿈꾸는 이가 있다면, 반대로 상징조작의 기법을 깨우쳐 민주주의를 가르치길 희망하는 이가 있다면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독재자의 흔적'과 '반면교사'의 교훈을 동시에 배울 수 있을 듯하다.

글'사진 도용복 대구예술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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