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엔 타인 느엉(43'베트남) 씨는 평생 농사만 지었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50㎞ 정도 떨어진 하이즈엉이 누엔 씨가 나고 자란 곳이다. 누엔 씨는 지난해 7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쌀농사를 지어서 네 딸의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 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누엔 씨의 몸이 고장났고 급성 마비질환인 '길랭-바레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온몸이 조금씩 마비되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는 침대에 누워서 네 딸을 생각한다.
◆자식 때문에…
18일 오후 대구의 한 병원 4층 입원실. 힘없이 늘어진 누엔 씨의 팔다리가 밀랍 인형처럼 흐물흐물거렸다. 그가 몸을 일으키자 아내 부티 탄(42) 씨가 재빨리 휠체어를 끌고와 힘겹게 남편을 휠체어에 태웠다. 이들 부부에게 화장실에 가는 평범한 일상도 이제 전쟁이 됐다.
누엔 씨의 병은 '급성 염증성 탈수초성 다발성 신경병증'이라고도 불린다. 이 병은 말초신경에 염증이 생겨 신경세포를 둘러싼 물질이 벗겨져 발생하는 급성 마비성 질환이다.
낯선 병명만큼 병세도 갑자기 나타난다. 감기나 가벼운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 평균 10일 안팎으로 발생하며 운동 신경에 문제를 일으킨다.
누엔 씨 부부는 딸 4명이 있다. 큰딸(21)과 둘째딸(20)은 유난히 공부를 잘했다. 큰딸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전교생 500명 중에서 2등을 할 정도로 머리가 좋았고 동네에서도 소문난 수재였다. 현재 큰딸과 둘째딸은 베트남 최고 명문대인 하노이대학교에서 각각 경제학과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다. 문제는 돈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두 딸 때문에 부티 씨는 2006년 비전문취업비자(E-9)를 받아 한국으로 왔다. 하지만 누엔 씨가 쌀농사를 짓고, 아내가 매달 50만원씩 돈을 부쳐줘도 한 학기에 900백 동(한화로 약 50만원)하는 두 딸의 대학 등록금과 하노이에서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베트남의 도시 노동자 펑균 임금이 15만~20만원으로 두 자녀의 대학 등록금은 이들 부부에게 큰 부담이었다.
"애들도 평생 우리처럼 농사만 지으며 가난하게 살게 할 수는 없잖아요. 자식이 공부하고 싶다는데 말릴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누엔 씨는 1천500만원의 수수료를 들여 90일짜리 단기상용(C-2) 비자를 받았고, 지난해 7월 한국으로 왔다.
◆병이 앗아간 꿈
한국 생활은 시작부터 녹록지 않았다. 누엔 씨는 경북 칠곡군의 자동차부품 공장에 취업했고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도금하는 일을 맡았다. 바깥이 깜깜해지면 비로소 그의 일이 시작됐다.
오후 8시부터 오전 8시까지 밤 근무를 했고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같이 일했다. 한국인과 정식 비자를 받고 온 외국인 근로자들은 같은 일을 하고 한 달에 200만원을 받았지만 그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40만원 적은 월급을 손에 쥐었다. 온종일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일과 씨름했지만 그는 외롭지 않았다. 그가 번 돈으로 베트남에 있는 자식들이 공부를 하고, 앞으로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희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누엔 씨는 올해 4월 말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갑자기 오른쪽 허벅지가 딱딱해지고 걷기가 힘들어졌고 물건을 잡는 것도 버거울 만큼 손아귀에서 힘이 빠졌다.
병원비가 무서워 치료를 미룬 것이 화근이 됐다.
지난달 대구이주민선교센터의 도움으로 베트남 통역가와 함께 대구의 한 대학병원을 찾았고 그때 '길랭-바레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남편은 병원에 가는 것도 망설였어요. 베트남에 있는 애들한테 돈을 보내줘야 하는데 큰 병원에 가면 돈이 많이 든다고."
아내 부티 씨가 감각을 잃어가는 남편의 다리를 쓰다듬었다. 남편이 입원한 뒤 아내도 일을 그만뒀다.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남편을 24시간 간호하는 것은 모두 아내 몫이 됐다.
대학병원 의료진들은 "이 병에 효과가 있는 면역글로불린치료를 하면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고 적극 권했지만 한 번 치료에 200만원이 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치료를 포기했다. 각종 검사와 병원비 200여만원도 간신히 마련했기 때문이다. 또 미등록 노동자인 누엔 씨는 의료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앞으로 발생할 수백만원의 병원비도 문제다.
매달 번 돈을 고스란히 자식들 교육비와 생활비로 베트남에 보낸 탓에 수중에 남은 돈이 거의 없다. 꾸준히 약물과 물리 치료를 받으면 전신이 마비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병원에서 지낼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누엔 씨는 자기 몸이 점점 마비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네 딸을 걱정한다. 하노이에 있는 첫째와 둘째는 타지에서 밥을 잘 챙겨먹고 있는지, 고향에 있는 두 딸은 학교를 잘 다니고 있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아내에게 자식들 안부를 묻는다. 이게 부모의 마음이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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