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툭하면 "죽고싶다"…교사들 목죄는 '자살 노이로제'

#1. "아, 자살하고 싶다." 경북 경산의 남자 중학교 교사 박모(32) 씨는 얼마 전 수업시간에 과제를 많이 냈다가 학생 한 명이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내뱉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박 씨는 "지역 학생들의 자살이 빈발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수업시간에는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들어 심리적으로 위축된다"고 했다.

그는 "가벼운 체벌은 고사하고 갈수록 학생들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져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2. 대구 달서구의 한 고등학교는 올해 들어서만 학교폭력과 관련된 설문조사를 15차례나 했다. 설문조사에서 폭행당했다는 학생이 있으면 다시 설문조사가 이어졌다.

이 학교 교사 최모(47) 씨는 "설문조사 관련 공문이 시교육청에서 쉴 새 없이 내려와 수업준비를 제대로 못 할 지경"이라면서 "학생들이 설문조사에 솔직하게 응답하지 않아 설문 효과는 없고, 교사들은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 자살이 잇따르면서 대구경북 각 학교와 교사들이 '자살 노이로제'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 학생들은 교사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하겠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있으며, 교사들은 학교폭력 관련 설문조사와 학생 상담으로 파김치가 되고 있다.

일부 학생들은 '자살 공갈'을 통해 교사를 무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중학교 3학년 이모(15) 군은 "선생님한테 혼날 때마다 '확 자살해 버릴 거예요!'라고 선생님을 협박하는 친구가 많다"면서 "이렇게 하면 선생님이 더 이상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대구시교육청은 올해 대구지역 초'중'고 전 학생 36만여 명을 대상으로 정서행동발달 선별검사를 실시하고 심층 상담을 하고 있다.

하지만 교사들은 상담이 학생들과 친밀감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돼 효과는 없이 업무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불만을 내비치고 있다.

달서구 한 중학교 교사 김모(40) 씨는 "요즘 수업 시간 이외에는 학교폭력과 자살 관련 설문조사를 하거나 학생 상담을 하는 데 대부분 시간을 쏟고 있다"면서 "교사들이 '상담 전문가'도 아니고 설문조사를 자주 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속에 있는 문제를 털어놓는 것도 아니어서 설문의 효과가 없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대구참교육학부모회 김정금 정책실장은 "일제고사를 보고 학교별로 성적 비교를 해 순위를 매기는 현 교육 시스템 안에서 교사들이 심층적인 학생 상담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교육정책의 중심이 학생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문제를 터놓을 수 있는 학교 분위기를 만드는 데 모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김항섭기자 suprem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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