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에 관한 한 대구 수성구는 대구의 '강남'이다. 오히려 대치동으로 대표되는 서울의 강남을 능가한다.
최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공개한 2012학년도 수능성적을 보면 수성구 한 고교의 1'2등급 학생비율은 평준화 일반고 가운데 전국 1위를 차지했다. 고교 단위로 상위권을 휩쓸고 있는 서울 강남의 유수학교들을 모두 제친 것이다.
1'2등급 비율이 높은 대구 상위 10개교를 봐도 달성군 한 곳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9곳이 모두 수성구에 몰려 있다. 반면 부산은 5개 구, 인천은 6개 구, 광주는 4개 구에 고루 분포됐다.
10개교의 1'2등급 비율 평균도 전국 최고치다. 부산, 인천, 대전, 광주의 상위권 고교의 성적은 수성구 고교가 싹쓸이하다시피한 대구의 상위 10개교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서울의 고교들만 수성구 학교와 견줄 수 있다.
서울 강남의 입시학원들도 수리 분야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리는 수성구 고교의 시험문제를 구입해 분석하고, 학원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교습을 할 정도다.
대구 동구 신서혁신도시로 이전하는 서울의 공공기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수성구 교육의 강점을 알고 있고, 대구의 다른 생활여건은 만족하지 못하지만 교육 분야에서만큼은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많았다.
이런 점만을 놓고 볼 때 수성구는 가히 '대한민국의 교육특구'라 할 만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성구 외의 지역에 살며 초'중학생 자녀를 둔 대구의 학부모들에게는 수성구가 '자녀들의 엘도라도'로 비쳐지고 있다.
2년 전부터 시행된 광역학군제로 타 구에 거주하면서 수성구 고교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자녀들이 고교에 진학할 시점이 되면 수성구로 이사를 가거나 위장전입을 통해 아이들을 수성구 고교에 진학시키는 학부모들이 부지기수였다.
대구의 고학력'고소득층도 자녀 교육을 위해 대부분 수성구에 거주한다. 의사, 변호사, 교수 등 이른바 전문직 종사자의 70% 이상이 수성구민이다.
그런데 왜 상대적으로 가정 형편과 교육 환경이 좋은 수성구 청소년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대물림 폭력 등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학교 폭력이 수성구에서 더 많은가.
수성구 학생 대다수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학업성취에 열성을 다하겠지만 일부 청소년들은 학업에 흥미가 없는데도 학부모와 학교의 요구에 따라 '무한경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수성구 내에서도 입시성적이 좋은 특정 학교에 들어가려면 초등학교, 중학교도 특정학교를 나와야 하고 초등학생 때부터 '수성구 시스템'에 적응해야만 수성교육특구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다.
실제 다른 구에서 상위권에 들었던 한 중학생의 아버지는 아들을 수성구 학교로 전학시켰더니 성적이 중위권으로 곤두박질쳐 아이가 학업에 흥미를 잃게 되자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다.
수성구 학생들의 치열한 입시경쟁, 성적경쟁을 빗대 수성구 학생들 간에도 신라시대 귀족인 진골과 평민인 이두품으로 나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이른바 '진골'은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어릴 적부터 수성구 교육에 적응하며 오랜 준비과정을 거쳐 좋은 성적을 거두는 학생들이다. 반면 '이두품'은 아예 학업에 흥미가 없거나 뒤늦게 수성구에 뛰어들어 방황하고 좌절하는 학생들을 빗댄 말일 것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생명을 놓기까지는 학교 폭력, 학력 비관, 친구 문제, 가정 문제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다. 수성구 교육모델에 잘 적응하며 부모님의 요구에 부응하는 학생들에 가려진 낙오 학생들은 수성구가 비극의 현장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런 낙오 학생들이 학교 폭력의 가해자가 된다면 모든 탓을 학생들에게 돌려야 할까.
'봄비가 잦으면 (풍년이 들어)시어머니의 인심이 좋아진다'는 말처럼 우리 청소년들에게 심성의 토양을 기름지게 해주는 노력과 투자 없이는 학교 폭력과 학생 자살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부모들이, 우리 학교가, 또 사회가 아이들에게 사랑의 이름으로 무심히 찌르고 있는 가시를 뽑아내지 않고는 튼실하고도 향기로운 꽃을 키울 수 없다. 세상을 등지면서까지 전하고자 했던 아이들의 간절한 메시지를 잊어버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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