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별다른 이슈 없이 국내에 개봉했던 영화 '테이큰'은 극장가에 돌풍을 일으켰다. 소리 없이 24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그해 최고 흥행작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추격자'에 비해 투자비 대비 흥행수입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다. 필자는 이런 결과가 2010년 개봉한 우리 영화 '아저씨'의 제작에도 모티브를 제공한 것으로 판단한다.
그렇다면 관객들은 영화의 어떤 부분에 매료된 것일까? 테이큰이 보여주는 박진감 넘치는 액션과 빠른 이야기 전개, 차별화된 영상이 관객들의 만족도에 상당 부분 기여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올해 9월에 개봉하게 될 속편을 벌써 애타게 기다리는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
필자는 그 해답을 테이큰이 관객에게 전달하려 했던 메시지 즉 '주제'에서 발견하고자 한다. 영화에서 이야기의 주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블록버스터를 표방하며 외형적 볼거리에 치중하는 액션영화 등에서는 '권선징악' 이상의 것을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나 테이큰은 명백한 결론을 관객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바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딸을 구출하기 위해 종횡무진하는 주인공 앞에 선 인물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단지 비즈니스였을 뿐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고 말한다. 이 얼마나 무섭고 태만한 일인가? 자신의 생계나 안위를 위해서 타인의 불행이라는 것은 안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업무를 묵묵히 수행함에 대한 결과로 주인공에게 감정적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 지점이 바로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일상에서 개개인인 관객들은 사회생활의 폭력적인 '룰'인 조직의 이익을 위한 희생이나 안전망을 위한 부조리한 묵인을 강요받는 경우가 많다. 이런 룰에 벗어나는 인물은 배신자나 문제인물로 낙인찍힌다.
이런 필자의 견해에 대해 사회를 필요 이상으로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이들도 있겠으나 올바른 일을 실현하고자 했던 '내부 고발자'들이 그후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확인해 볼 일이다. 혹자들은 하기 싫으면 그만이라고 하지만 A라는 회사에서 부조리에 대항하다 해고되거나 옳지 않은 일이라 판단되어 사직한 사람을 B라는 조직에서 받아주는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영화 테이큰은 바로 이 사회의 모순을 정조준해 응징하고 있는 것이다.
영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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