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현수의 시와 함께] 아버지와 아들-김종해

사춘기가 끝나가자 아들은 가출을 했다. 초등학교 6년 내내 반장이었던 아들, 집과 학교가 없는 낙원을 찾아 아들은 문득 가출을 했다. 체제와 사회에 각을 세우고 갓자란 뿔을 들이댔던 어린 양 한 마리. 뿔은 가렵다. 목가적인 집안의 목책은 뚫렸고, 담임 선생님은 학내 감염을 우려해서 교실 곳곳마다 구제역 백신을 뿌렸다. 몇날 며칠 동안 텅 빈 구윳간을 보며 아버지는 잠을 설쳤고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했다.

 가출한 아들을 찾아서 아버지는 노숙자의 역과 어린 짐승이 뛰어놀만한 야생의 산과 초원을 뒤졌다. 아들의 절친 인맥을 하나하나 찾아 헤매던 아버지, 드디어 단서를 찾았다. 아들에겐 음악이 있었다. 아들은 초식이나 육식보다 향긋한 음악에 더 정신을 쏟고 있었던 것을.

 기적소리조차 검은 서울역 근처 남영동의 한 음악다방 DJ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 아들은 음악다방 문을 밀치고 나와 바람보다 빠르게 달아났다. 그 뒤를 아버지가 쫓아갔다. 기적소리조차 검은 서울역 뒤 골목에서 골목으로 아버지와 아들은 바람보다 빠르게 달렸다. 목책 바깥을 나와 길을 잃고 달려가는 어린 양 뒤로 아버지 양이 달려간다.

 석탄재 날리는 막힌 골목에서 마지막 질주는 끝나고, 아버지는 아들의 어깨를 짚고 헉헉헉헉. 아들은 머리를 숙이고 헉헉헉헉. 아버지와 아들 사이엔 세상의 어떤 인간의 말도 오가지 않았다. 가쁜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헉헉헉헉.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오랫동안 헉헉헉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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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사의 시선으로 삶의 장면들을 기록하였던 김종해 시인의 작품입니다. 양치기의 시선으로 풀어낸 이번 시에는 집나간 아들을 찾아 헤매는 아버지의 모습이 선연하네요.

어린 양이 가출을 한 것은 갓자란 뿔이 가렵기 때문이지요. 그 가려움은 모범생의 삶으로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겠지요. (그 아들 양이 시를 쓰며 그 가려움을 겨우 풀고 있다는 뒷이야기도 있지요.)

어린 양을 찾아 헤매며 그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도, 세상의 막다른 골목에서 헉헉거리며 아들을 만나는 것도 이 아버지 양의 문제만은 아닐 겁니다.

시인·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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