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극 맛있게 먹기] 희곡과 시나리오

'대본'이라는 공통점…시나리오는 소설과 비슷한 점 많아

오래전에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희곡은 희곡 전공자 외에는 읽는 사람이 거의 없다. 시나 소설도 예전처럼 인기를 얻고 있지 않다고는 하지만 희곡에 비하면 괜찮은 편일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희곡은 어느 문학 장르보다도 우리들 가까이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독자가 아니라 관객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은 희곡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무대상영을 전제로 한다는 희곡의 정의에도 걸맞은 것이니 아직은 희곡이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문학으로서의 희곡의 위치를 생각하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 시나리오의 경우에는 희곡보다 더욱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애초에 문학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될 것도 없겠지만 엄연히 작가가 존재하고 출판이 되고 있기 때문에 분명히 생각해 볼 문제다. 물론 희곡을 연극으로 읽는 것처럼 영화 시나리오는 영화로 읽는 것이다. 희곡이 공연을 전제로 하는 것처럼 영화 시나리오는 영화 상영을 전제로 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 시나리오를 읽은 적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희곡과 시나리오를 아주 비슷하거나 거의 같다고 생각한다. 단지 연극의 대본이냐 영화의 대본이냐 하는 차이일 뿐이라고 당연한 것처럼 믿고 있는 것 같다.

연극의 대본인 희곡과 영화의 대본인 시나리오는 확실히 시나 소설과는 구분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듯이 희곡과 시나리오는 대사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사 중심인 작품이 희곡이나 시나리오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대사가 중심인 소설도 있고 대사가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연극이나 영화도 있다. 당연히 그런 연극이나 영화의 대본에는 대사가 없다. 이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연극은 배우들의 행동이 중심이 되는 극작품이고 영화는 그것보다 장면이 더 강조되는 극작품이다. 물론 둘 다 플롯이라는 것이 작품을 끌고 가는 핵심요소이긴 하다. 어쨌든 대사라고 하는 눈에 쉽게 보이는 특징 때문에 희곡과 시나리오를 비슷하거나 같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만약 희곡과 시나리오가 거의 같은 것이라면 각색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연극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연극으로 제작이 가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현실은 그렇지 않다. 두 형식 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미세한 기술적 차이를 뛰어넘는 중요한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영화의 대본인 시나리오는 희곡보다는 오히려 소설을 많이 닮았다. 소설에서 작가가 장면을 묘사하거나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는 등의 모습은 마치 영화에서 감독이 카메라를 통해 장면을 묘사하거나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는 것과 흡사하다. 작가가 희곡을 통해 관객들이 특정 인물의 눈을 주목할 것을 지시하더라도 실제 공연에서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낮다. 연출이 작가의 의도를 충실히 따르며 특정 인물의 눈에 집중하게 하더라도 관객이 어느 곳을 볼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영화는 소설처럼 작가나 감독이 의도한 곳을 독자나 관객에게 정확히 보여줄 수 있다. 관객은 연극과 달리 작가나 감독이 의도한 장면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의 관객은 연극의 관객에 비해 상상력이나 자유의지를 제한받는다고 할 수 있다. 연극은 무대라는 공간적 제약 때문에 제작진이 한계를 느끼게 되고, 영화는 더 이상 상상할 필요가 없이 극도로 친절하게 만들어놓은 장면 때문에 관객이 한계를 느끼게 되는 셈이다. 이것이야말로 두 장르의 분명한 차이다. 엄청난 상상력을 그대로 스크린에 재현해놓은 영화를 즐기는 관객과 연극무대의 한계 때문에 상상력으로 장면을 채워가야 하는 연극을 즐기는 관객의 자세는 서로 조금 다를 수밖에 없다. 오직 글자로만 구성된 원작소설이 강렬한 이미지로 가득한 영화보다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상력 때문이다. 누군가에 의해 이미 완성된 상상력을 즐기는 것이 영화라면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즐길 수 있는 것이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희곡과 시나리오에서부터 차이를 드러내며 출발한다.

안희철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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