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생명 존중 카드

군인에게 인식표(認識票)는 신분증과 같다. 흔히 군번표라고 불리는 인식표의 출발은 미국 남북전쟁이다. 당시 병사들은 개별적으로 군복 상의에 명찰을 달았다. 하지만 종이로 만든 것이라 쉽게 훼손되면서 전사자 신원 확인이 쉽지 않았다. 민간 업자들이 금속판에 이름을 새긴 인식표를 주문받아 통신 판매하면서 현재와 같은 인식표가 널리 쓰이게 됐다. 국가 차원에서 병사들에게 인식표를 지급한 것은 프랑스가 최초라고 한다.

오늘날 각국의 군대는 보편적으로 알루미늄 재질의 인식표를 쓴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인식표에는 이름과 군번, 혈액형이 새겨져 있다. 다치거나 사망 시 신분을 식별하는 용도가 전부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미국이 의료 기록 사항을 입력한 PIC(Personal Information Carrier) 인식표를 개발'보급하면서 유사시 의료진이 병사의 의료 기록을 신속히 추적해 수술 등에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 국방부도 최근 군번표에 차세대 유비쿼터스 기술인 무선주파인식(RFID) 칩을 부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주파수를 쏘는 작은 반도체 칩에 의료 기록 등 각종 개인 정보를 저장해 이를 읽어내는 방식이다. RFID 기술은 이미 교통카드나 출입증, 고속도로 요금 징수, 주차 관리 시스템 등에 적용돼 널리 쓰이고 있다.

소방방재청이 환자의 병력(病歷) 정보가 든 '생명칩' 신용'체크카드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생명 존중 카드'로 불리는 이 카드는 위급 상황 시 119 구급 요원 등이 단말기로 카드를 인식해 인적 사항, 혈액형과 병력, 만성 질환, 연락처, 주치 병원 등을 파악한다. 이 정보를 기초로 구급 차량에서 신속하게 응급 조치를 하고 환자가 다니는 병원과 연락해 정확한 진료를 받도록 한다는 것이다.

기술이 인간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대다. 이처럼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데 비해 인간 의식은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7월 시행 예정인 포괄수가제를 놓고 대립이 격화되면서 보건복지부 담당 공무원이 반대자의 협박과 욕설에 시달리다 수사를 의뢰했다는 보도다. '밤길 조심해라' '너는 평생 병원 신세 안 질 것 같지' 등과 같은 언어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찬반 양측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생명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사회적 공감대와 타협이 아쉽다. 기술과 이익이 아무리 요긴하다 해도 생명 본위의 인간 의식만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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