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대구 중구 봉산동 다님 백팩하우스 1호점. 대문을 열자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99㎡(30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다님에서 외국인 친구와 부대끼며 1박 2일간 정을 나눴다.
◆조금씩, 천천히, 너에게
오후 8시. 다님에 들어서자 대표 이성빈(30) 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외국인들이 모두 쇼핑을 나가 방은 텅텅 비어 있었다. 친구들이 오기 전 다님을 살짝 둘러봤다. 한쪽 벽면에 장식된 부채와 하회탈, 태극기가 눈에 들어왔다.
반대쪽 벽면에는 게스트하우스를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사진이 붙어있다. 1호점은 6인실 방이 3개다. 방문을 열자 큰 트렁크 가방이 있고 이층 침대 위에는 옷가지가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벽에는 방문객이 쓴 글이 잔뜩 적혀 있었다. '폭풍 같은 대구였어요.' '신세계를 경험했어요.' '얼떨결에 와 봤는데 놀라운 곳이네요.'
문구들은 다님과의 하루가 얼마나 즐거웠는지를 잘 보여줬다. 옥상에는 큰 욕조와 망원경, 테이블이 차려져 있다. 날씨가 좋을 때는 옥상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곤 한다.
욕조는 풀장용이다. 곧 선베드를 깔아 일광욕을 즐길 계획이라고 했다. 주인 이 씨는 "작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는 여름인데도 방문객이 너무 많아 옥상에 텐트를 치고 잤다"고 했다.
오후 10시.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들어왔다.
이날 다님에는 카자흐스탄에서 온 24명의 친구들이 단체로 와 있었다. 대국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공연 제목은 '로미오와 줄리엣'.
전날 뮤지컬 공연을 무사히 끝내고 이날은 휴식날이었다. 자유 시간을 즐긴 후 뒤늦게 들어온 이들의 손에는 쇼핑 가방이 잔뜩 들려 있다.
마이우아(28'여) 씨는 "여동생 주려고 신발을 샀다"며 마루에 쇼핑한 것을 쏟아부었다. 다님 직원들과 외국인들은 서로 가족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씩 친구가 되어 갔다.
◆시간과 마음의 공유
작은 거실에 20여 명이 가득 찼다. 몇몇은 소파에 앉아 야구를 보고, 몇몇은 식탁에 둘러앉아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자랑했다. 모두 편한 옷을 입고 있었다.
여자들은 화장을 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럼이 없다. 카자흐스탄인, 영국인, 싱가포르인이 눈앞에서 왔다갔다한다. 귀에는 여러 언어가 뒤섞여 들려온다.
오후 11시. "딩동. 찜닭 왔습니다." 저녁을 먹지 않았다는 나싼 포드(27) 씨를 위해 준비한 것이다. 영국에서 온 나싼 씨는 14일부터 부산과 제주를 거쳐 이날 대구에 왔다.
방이 없다고 했지만 호텔은 배낭 여행자에겐 너무 비싸 무작정 다님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며칠을 머무르며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No Plan"(무계획이 계획이에요)이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 대표는 "저와 계획을 짜기로 했는데 얼마나 있을지는 저하기에 달렸다네요. 열심히 해봐야죠"라며 웃었다.
순식간에 찜닭 한 마리가 동났다. 나싼 씨는 "잊을 수 없는 맛이다"며 흡족해했다.
다님에는 나싼 씨처럼 직원과 함께 일정을 만들어가는 여행자가 많다. 다님에는 의무는 아니지만 나름의 규칙이 있다. 식사는 여행자들과 어울려 먹기부터 요일마다 근대골목투어, 서문시장 가기 등 다채로운 추억을 함께 만들어간다.
여행자들과 시간의 공유가 다님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전날은 게스트용 바에서 맥주 파티를 오전 4시까지 했다. 쿨가라브(21) 씨는 "다님과 함께한 시간이 길어 이젠 가족 같아 헤어지면 무척 아쉬울 것 같다"고 했다.
오고 가는 정 속에 사랑이 싹트기도 한다. 이 대표는 "케이팝 공연을 보러 온 프랑스 여자와 군대에서 잠시 휴가 나온 까까머리 남자가 다님에서 만나 사랑을 꽃피웠다"고 말했다.
◆이 밤의 끝을 잡고
자정이 넘었지만 다님에는 웃음꽃이 끊이지 않았다. 기자는 하품이 쏟아졌지만 카자흐스탄 친구들은 지친 기색이 없었다.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거나 한국 라면을 끓여먹고, 통닭을 시켜먹기도 했다.
자넬(22'여) 씨는 "한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잠으로 보낼 수 없다"며 자려는 기자를 잡았다. 내일이면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오전 3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오전 5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빨갛게 된 눈을 비비며 일어난 친구들은 서둘러 세수를 하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분주한 와중에도 매니저 채숙향(28) 씨를 위한 영상 편지를 만들었다. 예스람(26) 씨는"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줘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채 씨의 손을 꼭 붙잡았다.
채 씨는 "이렇게 가버리면 허전하고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친구들과의 만남은 내 삶의 버팀목"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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