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앙코르와트 무너뜨린 건 '모기'

판도라의 씨앗/스펜서 웰스 지음/김한영 옮김/을유문화사 펴냄

캄보디아의 장대한 사원 유적인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는 9~15세기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였다. 뉴욕보다 넓은 이 도시에는 한 때 75만 명이 모여 살았다. 앙코르와트는 규모만큼이나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했다. 식수와 농업용수를 대기 위해 인근 강에서 물을 끌어오는 복잡한 수로가 건설됐다. 숲을 개간해 식량을 공급하기 위한 광활한 논도 만들었다.

번성하던 도시를 무너뜨린 건 다름아닌 '모기'였다. 수심이 얕고 햇볕이 드는 논과 유속이 느린 수로는 말라리아 모기의 완벽한 서식처였다. 모기가 늘면서 많은 수의 주민들이 감염됐고, 사람들은 죽거나 떠났다. 불과 몇 세대만에 앙코르는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죽은 도시로 변했다. 농업의 발달과 치밀한 도시 건축이 되레 도시 자체를 궤멸시킨 셈이다.

이 책은 농업에서 비롯된 문명의 속성과 인간의 진화적 본성 간의 충돌을 탐구한 책이다. 생존을 위한 선택에서 시작된 농업이 야생동물의 가축화, 도시화와 계급 구조의 탄생, 변질된 종교원리와 근본주의, 비만이나 당뇨병과 같은 질병, 불안과 우울과 같은 정신질환, 군대와 전쟁 등의 부작용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건 1만 년 전. 상자 안에 들어있던 건 '씨앗'이었다. 농업의 시작이자 문명의 싹을 틔운 씨앗. 인류는 식량을 지배하며 많은 인구가 사는 대도시를 세웠다.

하지만 풍요로운 정착 생활에도 인간의 건강은 뒷걸음질쳤다. 지중해 동부에 살았던 구석기 시대의 수렵채집인 남성의 평균 수명은 35.4세, 여성은 30세였고 신장도 남성 평균 177cm, 여성은 166.6cm 였다. 하지만 세계 인구가 농업으로 이행한 신석기 시대 말에 남녀의 수명은 33.1세, 여성은 29.2세로 오히려 줄었다. 신장도 남성은 161cm, 여성은 154.1cm로 더 작아졌다. 가축과 공동생활을 하면서 동물을 매개체로 한 전염병도 창궐했다. 인간과 가축이 공유하는 질병 중 26종류가 닭에서 발견되고, 42종류가 돼지, 50종류가 소에게서 발견된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스(SARS)나 신종플루, 인간 광우병 뿐만 아니라 홍역, 결핵, 천연두, 독감 등도 모두 농장 동물로부터 시작됐다. 농업 발달 이후 전염병은 인류의 가장 큰 사망원인이 됐다.

인류의 정신 건강도 위협받고 있다. 대규모 집단 생활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이다.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유의미한 사회적 관계의 최대치는 인간이 속한 모든 종류의 자연집단의 크기와 유사한 150명 정도지만, 늘어난 인구 때문에 너무 큰 사회적 자극 속에서 스트레스를 겪으며 산다. 이 때문에 세계적으로 4억 명 이상이 간질이나 정신분열증, 우울증 등 다양한 질병으로 고통받고, 매년 100만 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에는 정신질환이 심장병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사망 및 장애원인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저자는 수렵채집인의 생활방식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진 않는다. 다만 더 많은 것을 원하고 갖고자 하는 '탐욕'을 버려야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욕심을 줄일 때에야 기후 변화의 문제들과 타협할 수 있고 유전공학 같은 강력한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최선의 방법을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315쪽. 1만5천원.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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