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通] 최봉태 변호사…강제징용피해자, 日 기업 배상책임 승소 판결 이끌어

對日 과거사 완전청산 나선 21세기 독립군…내 힘의 원천은 '대구정신\

지난 5월 대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 판결을 내렸다. 최봉태 변호사는 일본 대기업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 이들 회사의 법정 대리인으로 나선 국내 최고의 로펌 김앤장을 상대로 역사적인 승소 판결을 이끌어 낸 주인공이다.
지난 5월 대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 판결을 내렸다. 최봉태 변호사는 일본 대기업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 이들 회사의 법정 대리인으로 나선 국내 최고의 로펌 김앤장을 상대로 역사적인 승소 판결을 이끌어 낸 주인공이다.

"해방 이후 처음으로 국격을 회복한 쾌거였다." "70여 년의 한을 푼 순간이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다윗이 이겼다."

지난 5월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 판결을 내린 후 쏟아져 나온 찬사들이다. 이번 판결은 우리나라 사법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권을 인정한 첫 판결이기 때문이다.

일본 대기업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 이들 회사의 법정 대리인으로 나선 국내 최고의 로펌 김앤장을 상대로 역사적인 승소 판결을 이끌어 낸 주인공은 최봉태(50'법무법인 삼일) 변호사다.

그는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ID를 '독립군'으로 정할 만큼 일제 과거사 청산에 남다른 애정을 쏟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뿐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소송 현장에는 어김없이 그가 있었다. 1997년에는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을 만들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켰다. 최 변호사는 대구 토박이다. 공부를 위해 잠시 대구를 떠난 것 외에는 줄곧 대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경상도 보리문디의 정신으로 일제 과거사 청산 일을 한다는 그를 만나 21세기형 독립군의 삶을 들여다봤다.

◆대일 저격수가 된 까닭은?

최 변호사에게 일제 과거사 청산은 인생의 화두다. 그는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자 진상 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추진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2001~2004년), 국무총리 산하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2005~2006년)을 역임한 데 이어 현재 대한변호사협회 일제피해자 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과 외교통상부 한일청구권협정 법률자문위원을 맡고 있을 정도로 일본 과거사 청산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최 변호사가 일제 과거사 청산에 천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9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된 그는 1994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노동법을 공부하기 위해 도쿄대 대학원에 진학한 것이 과거사 청산으로 인생 항로를 정하는 결정적인 단초가 됐다. "제가 일본으로 유학을 간 1994년은 일본에서 전후 보상 소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였습니다. 양심 있는 일본 변호사들이 피해자들의 배상 문제를 놓고 일본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치열하게 다투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변호사로 우리 민족의 아픔을 등한시했다는 죄책감마저 들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권리 찾기

최 변호사는 1997년 일본 유학에서 돌아오자마자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을 만들어 일제 과거사 청산 운동에 시동을 걸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진상 규명을 위해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2006년 한일협정문서공개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또 '우리 정부가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하지 않아 위안부 피해자들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받았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해 지난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국가의 부작위는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은 우리 정부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 온 정부가 위헌 판결을 계기로 해결 의지를 보인 것. "헌법재판소 판결로 그동안 뒷짐을 지고 있던 우리 정부에 발등이 불이 떨어진 셈이죠. 외교통상부에서 대책팀을 구성하고 새누리당도 올해 초 태스크포스를 발족시켰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치권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했다. "태스크포스를 만들면서 회의를 한번 한 뒤 지금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습니다. 정치권이 선거를 앞두고 보여 주기 위한 정책을 남발하기보다 진정성을 갖고 일제 과거사 청산 문제를 다루어 주었으면 합니다. 특히 대권 주자들이 일제 과거사 청산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랍니다."

최 변호사는 일제 과거사 청산 활동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한국민의 무관심이라고 했다. 그는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호칭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과거 정신대할머니로 불리다 종군위안부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종군이라는 말에는 자발적으로 참여를 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 요즘에는 일본군 위안부로 부르고 있습니다. 바른 호칭을 아는 것이 관심의 시작입니다."

◆강제징용 피해자 위한 재단 설립이 현실적 대안

일본 기업에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책임을 물은 대법원 판결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결정이다. 대법원이 고등법원의 판결을 뒤집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냄에 따라 고등법원은 재심리를 통해 배상액을 결정해야 한다. 미쓰비시중공업을 대상으로 한 배상 소송은 부산고등법원, 신일본제철을 대상으로 한 배상 소송은 서울고등법원이 관할이다. "아직 재심리 날짜는 잡히지 않았습니다. 모두 9명의 원고가 소송에 참여했는데 1명당 1억에서 1억1천만원의 배상금을 청구한 상태입니다. 고등법원에서 배상금을 얼마로 결정할지 의문입니다."

하지만 배상액이 정해지더라도 풀어야 할 과제는 남아 있다.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이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에는 이들 기업의 한국 내 자산에 대해 강제 집행을 해야 하지만 외교 마찰이 우려되기 때문에 강제 집행을 하기에도 부담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해 최 변호사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배상 판결이 나면 배상을 해야 하는 것은 상식적인 문제입니다. 세계적인 기업이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국제적인 망신을 살 것입니다. 게다가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은 우리나라에서 영업을 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배상 책임을 회피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최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우리나라 사법주권을 회복하고 동아시아 일제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준 결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대법원 판결을 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소송을 문의해 오고 있어 유사 소송이 줄을 이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일일이 재판을 통해 배상을 받는 것은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고 했다.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은 개별 보상이 아니라 포괄 보상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재단을 설립한 뒤 기금을 출연해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하는 방안이 바람직합니다. 이는 독일이 전후 피해 보상을 한 방식입니다."

그는 2+2재단 설립을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했다. 2+2재단에는 한'일 양국 정부와 일본 기업뿐 아니라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체결하면서 일본에게서 받은 돈을 사용한 우리나라 기업들도 참여해야 한다는 것. "현재 재단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태스크포스를 구성했고 지난해 9월에는 피해자들이 중심이 되어 가칭 일제피해자지원재단 추진기획단도 발족했습니다. 일제피해자지원재단이 설립되면 한일청구권협정의 수혜 기업인 포스코가 100억원을 출연하기로 했습니다. 또 한국도로공사'한국전력'코레일'외환은행'KT'수자원공사 등 10개 기업도 출연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일제피해자지원재단이 2+2재단의 모체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최 변호사는 포스코가 출연하기로 약속한 100억원은 혜택에 비해 너무 적은 금액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기업들 가운데 한일청구권협정의 수혜를 본 기업들이 많습니다. 이들 기업이 도덕적 책임을 지고 자발적으로 기금을 출연해야 합니다. 출연금 액수는 연매출의 1%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독도 해법은 득인(得人)

최 변호사는 4년 전 구성된 대구변호사협회 독도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가 위원장을 맡은 것은 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님을 명시한 총리 부령의 존재를 발견하고 이를 알린 주인공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한일협정문서공개소송에서 승소한 최 변호사는 2007년 6만 쪽에 달하는 한일회담 관련 문서를 건네 받았다. 그런데 문서 중에서 검은 줄로 삭제된 부분이 있었다. 최 변호사는 삭제된 부분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과정에서 그것이 총리 부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최 변호사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갈수록 격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독도 문제를 슬기롭게 푸는 방법은 사람을 얻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영토를 갖고 분쟁을 벌여 봐야 잘해야 본전입니다. 독도 문제는 일본의 양심과 민주주의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양심적 일본인들이 늘어나면 독도 문제는 자연적으로 해결이 됩니다."

◆히젠토 환수는 민족의 자존심이 걸린 일

최 변호사는 2010년 구성된 히젠토 환수위원회 공동위원장도 맡고 있다. 히젠토는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데 사용되었던 칼로 현재 일본 구시다 신사에 보관되어 있다. 그가 히젠토 환수를 추진하는 것은 민족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서다. "히젠토는 비극의 상징물입니다. 범행에 사용된 흉기가 압수되지 않고 신사에서 신성한 물건으로 대접받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민족의 자존심과 연관된 문제입니다."

그는 구시다 신사를 방문해 환수를 추진했지만 신에게 바쳐진 공물이라는 어이 없는 답변만 듣고 돌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지속적으로 환수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히젠토 환수를 추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히젠토의 존재를 통해 한일강제병탄의 부당성과 일본의 역사왜곡, 일본의 부도덕성을 널리 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진정으로 과거사를 반성한다면 히젠토 환수에 응해 주리라 생각합니다."

최 변호사는 자신의 꿈은 동아시아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럽은 국가를 넘어 하나의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아시아는 역사 문제로 갈등하고 있습니다. 70여 년 실종되었던 정의를 회복하고 아이들에게 하나 되는 동아시아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신뢰관계 회복이 급선무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의 진심 어린 반성이 필요합니다." 최 변호사가 펼치고 있는 활동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한일 양국을 넘어 동아시아를 향해 있었다. "혼자 꾸면 꿈이지만 모두가 함께 꾸면 현실이 됩니다"는 그의 말에서 꿈을 실현하려는 확고한 의지와 희망의 싹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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