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도심 운하

요즘 '운하'(運河)라는 말만 들어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물과 배가 연상되면 '낭만적이다'라는 생각을 맨 먼저 떠올려야 할 텐데 현실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현 정부가 대운하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했던 후유증 때문일 것이다. 대운하 사업은 장점도 있었지만 폐해가 훨씬 더 많았다. 대기업을 배 불리기 위한 사업이라든지 자연 파괴 같은 환경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두고두고 계속될 듯하다.

이런 논란은 지극히 한국적인 상황일 뿐이다. 실제로 운하는 낭만의 결정판이다. 운하에 배를 띄워놓고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선상 파티라도 연다면 얼마나 즐겁겠는가. 운하의 도시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이탈리아 베니스는 부부나 연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관광지이다. 볼 것이 크게 없는 유럽의 변방 도시에 불과하지만, 운하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운하에 의해 만들어진 분위기와 낭만을 맛보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곤돌라를 타고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즐겁지 않은가.

포항에도 내년 8월쯤 도심 운하가 생겨난다. 도심을 흐르는 형산강과 동빈내항을 연결하는 1.3㎞의 동빈운하 공사가 바로 그것이다. 원래 포항 땅은 형산강 하구에 의해 만들어진 '강의 도시'였다. 형산강이 흘러내려 오다 송도를 가운데 두고 물길이 남북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었다. 북쪽 물길은 산업화와 형산강 방조제 공사로 인해 막혀버렸는데 이번에 운하를 통해 복원되는 것이다. 암스테르담이나 베니스의 크기에 비해 훨씬 적은 '미니 운하'에 불과하지만 낭만과 즐거움을 만끽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 포항시의 설명이다. 미니 운하에는 물고기를 노닐게 하고 소형 유람선과 보트를 띄울 것이라고 한다.

걱정되는 부분도 적지 않다. 운하 주변에 특급 호텔과 워터파크, 부력식 공원, 쇼핑센터 등을 세우겠다는 계획은 그럴듯한 것 같지만, 운하 주변에 새로운 도심을 만들어 통째로 집어넣겠다는 발상과 다름없다. 포항시의 계획대로라면 주변 시설이 중심이고 운하는 보조물에 불과해진다. 누가 그런 운하를 보러 오겠는가. 현실 여건상 포항시의 계획은 실현 불가능하겠지만, 너무 거창하고 현시적인 프로젝트는 위험하다. 동빈운하를 진정한 포항의 랜드마크로 삼으려면 발상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하면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운하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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