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는 1919년 3'1운동으로 총칼 탄압의 무단(武斷)통치에서 한발 물러섰다. 이때 시대의 어둠을 밝힌 빛이 된 '개벽'(開闢)이 나왔다. 김일성도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밝혔듯이 열렬한 독자였다. 1920년 오늘 창간했으나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1926년 8월 1일 폐간하면서 7년 동안 72호를 냈다. 이는 편집인 이돈화(1884~?) 덕분이었다. 대부분 잡지 수명이 몇 호에 그친 것에 비해 대단한 일이었다.
1902년 동학에 가입, 천도교와 인연을 맺은 그는 천도교 지원 아래 종합지인 개벽을 만들어 항일 민족운동에 활용했다. 무려 34회에 걸친 발매금지(압수)와 정간(1회), 벌금(1회)의 탄압 가시밭길에도 굽히지 않았다. 특히 그의 논설은 김일성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는 3'1운동 실패로 좌절된 독립의 뜻을 이어간 개벽 창간으로 잇따른 다른 잡지의 탄생 역할의 선봉이 됐다. 개벽이 '민족의 수난기, 어두운 암흑기에 어려움을 타개하려는 선구자, 앞길을 밝혀주는 선각자로서 신문화 사상 및 독립운동 사상에 큰 업적을 이룩한 민족 잡지'로 평가받는 까닭이다. 그는 1923년 청도교청년당 창당 등 열성적 종교활동도 했다. 불행히도 6'25전쟁 때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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