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현수의 시와 함께] 굵은 팥알 뿌려놓은 듯/ 장옥관

굵은 팥알 뿌려놓은 듯 새까맣게 달라붙어 있다. 어물전 좌판이 거둬진 자리 검은 왕파리 떼 보도블록을 더듬고 있다. 아교풀 발라놓은 듯 집요한 허기 손뼉 치고 발 굴러도 떨어질 줄 모른다. 검은 비로드 걸치고 LED투광기 같은 겹눈 달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 훑어보지만 핥을 수 있는 건 감질나는 비린내뿐. 한 자 한 자 철필로 베끼며 책 속에 생애를 빠트린 검은 옷의 수사(修士)들. 배고프면 먹을 일이지 흰 종이에 [포도주, 고기, 빵]이라고 써넣고는 그 종이를 먹는 한심한 영혼이 보도블록 문장에 찍힌 검은 방점을 헤아려보고 있다.

삶의 세세한 풍경을 찬찬히 그려내는 장옥관 시인의 작품입니다. 이번에 시인의 눈에 포착된 것은 보도블록의 비린내를 핥는 왕파리 떼입니다.

왕파리가 비린내만 남은 보도블록을 핥는 모습이 마치 종이에 글자를 써서 먹고사는 시인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래서 왕파리가 단순한 곤충을 넘어 순식간에 수도사로 승격되는 것이겠지요. 세상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이 자발적인 가난, 이 무욕의 허기가 때로는 삶의 가장 소중한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 한심하게 보이기도 하겠지만요.

시인, 경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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